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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몬주의에 대항하여 하나님나라운동 블로그 - 현재 우리 사회는 맘몬주의에 물든 기독교신학과 비성경적 신앙이 판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하나님나라 운동가들이 이 블로그를 만들고 그들과 싸워보고자 한다. 봄풀내음


 
 
한국 사회의 '맘몬 숭배'가 배태한 '삼성숭배교'
'삼성숭배교'에 맞설 예언자적 지식인이 절실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국토 훼손에 착수했고, 언론 장악 및 검찰과 사법부 장악 시도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쉼 없이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사장 및 이사장의 인사권을 통해 공영 방송을 장악한 결과, 공영 방송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모든 기사들을 외면하고 올림픽 경기, 범죄 현장에 대한 도가 넘는 선정적인 취재 및 보도 등에 몰입해 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더 나아가 여러 가지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터뜨려 야당과 비판적인 시민들의 전열을 흩트려 놓고 전 국민의 탈정치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땅의 가난한 시민들을 폭압적으로 다루고도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법이 거의 없다. 태안 앞바다 유조선 충돌로 생업의 터를 잃은 어민들이 부르짖어도, 용산 재개발 지역 주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철거 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에게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과와 위로의 말을 하지 않는다.

대운하 사업의 추진 가능성이 막히자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꾼 참혹한 대토목 공사를 벌이는 정부의 무리하고도 강압적인 일 방식 앞에 양식 있는 국민들은 민주주의 역사가 급격히 후진하고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인다. 그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외골수로 자기 길을 가며 국토를 불가역적으로 훼손해 가는 정부를 보면 탄식과 불안은 깊어 간다.

그러나 이런 명시적인 실정 외에도 이명박 정부가 끼친 더 지속적인 폐해는 몰윤리적 금권숭배, 물신 숭배 풍토를 전 국민적으로 확산시킨 일이다. 경제 성장과 부에 대한 전 국민적 열망을 등에 업고 등장한 이 정부는 한 나라의 근본인 공평과 정의의 토대를 무너뜨릴 기세를 서슴없이 보여 주고 있다.

나라의 근본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국민에 대한 친절과 배려, 돌봄임과 동시에 불법적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떨치는, 범람하는 권력 계층들을 공명정대함으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적은 복지 예산을 갖고 있는 주제에 그 작은 복지 예산마저 삭감하고 강한 자 중심의 국가 운영에 전력을 기울인다.

마침내 정부는 지난 연말에 이건희 삼성 회장만을 단독으로 사면했다. 이건희는 여러 가지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년도 안 되어 사면된 것이다. 이건희의 사면에 의혹의 시선을 보낸 국민들에게 그 사면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청와대 당국자는 삼성의 평창올림픽 유치 지원이나 삼성의 세종시 입주 및 투자를 암시적으로 요구하는 논평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삼성이 갖는 경제력을 믿고 정의감과 법적인 형평의 원칙을 아주 손쉽게 내팽개쳐 버렸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삼성은 어떤 가치와도 다툴 수 없는 초월적 신성 구역에 존재하는 일종의 종교적 성소처럼 보인다. 삼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한 국민의 민족정신과 얼의 집결체요, 삼성의 성취는 현대 한 국민의 국가적 성취의 집약물이라는 생각이 많은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이 이룬 모든 것, 그것은 50여 년 전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루고자 했던 바로 그 꿈이었다고 보는 통속적인 국민감정을 호소하여 삼성을 비호한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정부의 사면은 돈만 있으면 정의를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국민에게 심어 줌으로써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 둘 사이에 있는 모순의 괴이함을 전혀 감지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정희식 조국 근대화와 '잘 살아 보세'의 귀착지, 삼성

삼성과 같은 재벌 그룹은 엄격하게 말하면 특정 기업가 가문이 키운 순수 사기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관치 금융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의 각종 지원과 특혜 속에 성장했다. 그것은 "5,000년 가난을 떨쳐 보자"며 등장한 박정희 군사 정부가 양육한 기업이며 사주 기업가 가문의 창의 경영이나 공세적인 기술 개발로서만 아니라, 온갖 악조건에 저임금을 참고 불리한 노동 여건을 견뎌 가며 일해 준 직원들과 삼성에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들, 중소기업에 속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일어선 기업이기도 하다.

삼성은 결국 우리 조국의 슬픈 근대화 역사에서 태어난 한국민의 정신적 열망의 집약적 외화물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민주주의 가치와 물질적 번영과 부에 대한 추구가 각축하는 전장이었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후 조국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경제 성장과 번영을 위해 모든 국가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 인권, 정의와 평등, 자유와 안식권을 포기했다.

이런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향한 질주는 박정희 군사 정권 이래 권력과 견고한 동맹을 맺어 온 전근대적인 재벌 기업들에 의해 추동되었다. 그 한복판에 삼성이 있다. 삼성은 국민 기업이 아닌 다국적 자본들에 의해 움직이는 다국적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성이 대한민국의 국민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은 기실 알고 보면 4%의 지분을 갖고 있는 창업주 가족들의 출자 순환이라는 독특한 제도와, 얼마 전까지 존치되었던 그룹기획구조본부실이라는 기관의 음험한 기업 공학적 경영을 통해 전체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세습 왕조적인 기업(dynastic enterprise)이다. 세습 왕조라는 틀 때문에 그 내부에서 어떤 비리가 자행되어도 공개적인 비판과 감시를 받지 않으며, 공식 회계 장부에는 드러나지 않는 천문학적 비자금을 운영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으려고 삼성은 그 비자금을 갖고 정부 기관, 고위 공무원, 검찰의 기소권, 법관의 판결, 지식인의 날카로운 펜, 언론, 그리고 종교적 양심까지 매수한다. 비자금의 힘으로 사로잡고 아우르고 거느리고 마침내 지배하는 일종의 신적인 영향력을 무소불위로 행사하는 신성한 지휘부로 올라선 것이다.

이 세습 왕조적 재벌 그룹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과 반도체 등 주력 기업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 총생산 22%를 담당하는 국가 대표급 기업, 삼성반도체나 전자 제품을 통해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제고하는 국가 대표급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삼성의 불의와 불법을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세계를 상대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무역으로 외화를 획득하여 국부를 증가시켰고, 한국 경제의 파이를 늘린 선구자적인 기상을 과시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7년 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전 삼성구조본 소속 법무 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3대 죄악을 폭로하고 고발했다. 사제단과 김용철이 밝힌 삼성의 죄악은 첫째,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과 탈세를 위한 회계 조작, 둘째 용인의 에버랜드 전환 사채 헐값 매수를 통한 경영권 불법 승계 및 법정 증거 조작, 셋째, 정관계·학계·법조계·종교계·언론계를 대상으로 한 로비를 통한 양심 매수 행위다.

정치권은 삼성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을 임명했으나, 특검은 도리어 삼성에 면죄부를 주는 지극히 미약한 기소로 종결되었다. 약 2년 이상 끌다가 작년 연말에 이뤄진 삼성 불법 승계 관련 일반 재판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고, 정부는 급기야 이건희를 작년 성탄절 단독 사면으로 기업 일선에 복귀시켰다. 이건희 복귀는 세종시 기업 유치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힘을 써 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이뤄진 거래라는 것이 언론과 시민들의 판단이었다.

삼성은 이른바 떡값 검사 파동에서 밝혀진 것처럼 검찰에 엄청난 양의 돈을 뿌려 장학생들을 키우고 있으며 <중앙일보>를 통해 언론계로부터 오는 간헐적인 공격을 막아 낼 방어진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고급 호텔 숙박권으로 사람들을 매수하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장면도 나온다. 삼성은 한국의 지휘부를 돈으로 매수하여 지배한다.

그 결과 삼성의 가족으로 입적된 사람들은 보편적인 공익이나 대의가 아니라 삼성 기업의 사적 이익에 우선 복무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지휘부·언론·지식인·사법부 모두가 삼성 앞에서는 작아진다. 일반 국민들도 삼성의 경제적 위력이 내뿜는 아우라에 의해 삼성 숭배에 쉽게 빠져든다. 삼성은 도덕·윤리·정의·인권 가치 등을 삼켜버리는 무저갱이며, 부·풍요·국가적 자부심·국가주의의 상징이다.

삼성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담은 <삼성을 생각한다>.

 
 
전 삼성그룹 구조기획본부의 법무 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를 읽어 보면, 삼성 문제가 단지 정치와 경제 영역의 일탈이나 불법이라는 단순한 악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정밀한 신학적 성찰을 요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삼성의 경영 지휘부는 로마제국의 멸망기에 나타나는 흥청망청한 부패한 귀족들과 달리, 아주 영악하게 깨어 끊임없이 정복지를 찾아 나서는 민첩성과 공격성으로 잘 무장되어 있다.

분별력을 잃고 유흥과 쾌락에 탐닉하여 자기 파멸로 치닫는 명백한 악이 아니라, 작은 일에는 선을 도모하면서 더 큰 악을 범하는 교묘하게 위장된 악이다. 스스로도 자기가 하는 일들이 악임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삼성 지휘부는 확신에 차 판사를 30억으로 매수할 생각을 하고 국회의원에게 돈다발을 갖다 줄 생각을 스스럼없이 실행한다. 삼성은 우리나라의 모든 중요한 요소에 자기들의 에이전트(대리자)를 심어 둔 거대한 왕국인 것이다. 대형 법률 회사를 능가하는 300명 이상의 변호사들을 거느리고 국가 정보기관에 비해 손색이 없는 정보망을 구축한 경제 연구소와 비선 정보 구축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의식 있는 시민들은 삼성 문제를 알지만 그 위세에 눌려 무력감 속에 방치하거나 외면해 왔다. 삼성의 문제에 문제 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김용철 변호사는 이 책을 통해 삼성의 조직적 비리를 폭로하고 삼성이 국민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이건희 일가의 자기 보존을 위한 원색적인 금권 정치 공학에 관한 이야기이며, 무슨 이유인지 삼성의 쟁송을 분별 있게 다룰 능력을 박탈당한 무능한 검찰과 사법부 이야기이고,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언론의 이야기다. 그는 책에서, 삼성이 이렇게 큰 죄악들에 연루된 기업이면서도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라는 물신을 위해 오늘날 모든 가치를 뒤로 미루는 이른바 국민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86쪽). 떡값 검사나 기자들, 학자들도 이런 국민 정서의 뒤에 숨어 삼성 비리를 은닉하거나 모른 체한다고 볼 수 있다. 김용철이 이 책에서 부각시킨 삼성 비리 중 하나는 삼성 왕조의 경영권 세습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증언이다.

이 책이 폭로하는 또 하나의 삼성의 대국민 위장 비리는 <중앙일보>의 삼성 계열 분리 선언 책동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99년에 <중앙일보>는 삼성으로부터 계열 분리하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하지만 그것은 음험한 거짓 술책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앙일보>의 삼성 계열 분리는 위장이었고, <중앙일보> 편집국 내부 정보 보고가 하루 두 차례씩 삼성 구조본에 전달되었다"고 폭로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또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한다. 삼성에서 노조를 설립하면 어떻게 되는지 전 삼성노조 위원장 '김성환'의 고난에 찬 인생 역정이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저자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직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공무원의 철저한 매수로 인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 왜 삼성은 노조를 무서워할까? 삼성 직원들의 급료가 다른 회사들의 급료보다 월등이 높다는 사실을 보면, 삼성의 노조 포비아의 원인은 임금 협상 때문이 아니라 딴 데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비자금 경영, 불투명 경영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노조는 너무 투명한 공조직이라서 뇌물로 매수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노조가 있다면 이건희가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자기 아들에게 삼성그룹 전체를 넘겨주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 사채 발행을 통한 불법적 경영권 승계 행위를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한 회사의 노조는 단지 임금 협상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기업의 공적인 본질을 지키려는 기업 자체의 자기 검증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은 자기반성과 점검을 수행할 기관이 없는 윤리와 도덕의 사각지대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성취해 온 것이다. 삼성은 돈의 신적 위력을 가장 신실하게 신봉하는 물신 숭배교 종단인 것이다. '돈이 충성을 낳는다'는 삼성식 보상 원칙은 종교적 구원론처럼 잘 작동하고 있다. 실적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삼성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직원들에게 뿌듯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심어 준다. 이것은 삼성 숭배자가 누리는 일종의 유사 구원감인 것이다(참조. 마 6:22~24).

이처럼 돈에 위력에 토대를 둔 삼성의 금권 숭배적 구원관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 더러는 삼성 비자금을 한국 기업의 특수 상황에 비추어 설명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다국적 기업 삼성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비책일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비자금은 단지 회장 개인이나 가문의 축재의 일환이 아니라 기업으로서의 자기 존속을 영속화하려는 비책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 자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와중에서 여차하면 몰락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고도의 기업 경영 방식의 일환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삼성의 비자금 의존적인 기업 유지나 확장 노선이 그 안에 엄청난 반기업적 불의와 죄악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건희가 운용한다고 알려진 비자금 4조 5,000억 원은 대부분 사원들과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임금,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금, 고객들이 맡겨 둔 보험금 등에서 갈취한 자금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자금은 횡령과 배임을 통해 생긴 돈인 셈이다. 엄연히 주식회사인 삼성이 주주들과 사원들을 오랫동안 속인 결과 그렇게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용철의 책에서 밝혀졌듯이, 삼성의 비자금은 불투명하고 어두운 용처를 위해 비축되었던 돈이다. 지식인, 언론인, 공무원, 그리고 법조인의 영혼을 사는 데 뇌물로 사용된 돈이었던 것이다. 전 세계 50위권 대기업이 비자금을 갖고 대한민국의 양심을 매수하고 자기 이익에 복무하도록 역사한다는 사실은 무섭고도 서글픈 일이다. 결론적으로, 김용철은 삼성 비리의 뿌리는 비자금이며 그 비자금의 용처는 인격(영혼) 매수임을 분명하게 밝힌다(346쪽).

대한민국 국민의 물신 숭배가 바로 삼성 숭배교의 발상지

19세기 미국의 기독교 정치 사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에서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전 국민적 존경도 누리는 권력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권력자가 타락한 자라면 국민의 도덕성도 함께 타락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고 말한다.

삼성 이건희를 존경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민 기업가로 추켜세우며, 엄중한 죄를 짓고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년도 안된 사람에게 사면을 단행하는 나라에서는 국민성이 덩달아 급격하게 타락하게 된다. 삼성이 겉으로는 국가 대표급 기업이지만 우리 사회의 근본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극히 반공동체적인 암적 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박 정부와 삼성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맘몬 숭배(Mammonism)라는 한 배에서 태어난, 쌍생아(雙生兒)처럼 제휴하여 국민성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숭배하고 성공과 쾌락을 갈망한다. 삼성과 이명박 정부, 돈을 숭배하고 수단 방법을 불문하며 성공과 쾌락을 타락한 국민들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당기는 동맹자들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삼성,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우리 국민들, 우리 자신들의 타락한 인간성, 뒤틀리고 왜곡된 기독교 신앙을 문제 삼는 행위임이 드러낸다.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경배하는 것이 물신 숭배다. 이 물신 숭배의 근본은 구매력, 욕망 충족력을 무한히 확장하려는 욕망이다. 돈 숭배는 결국 영적 존재가 자기의 욕망을 신격화하고 무한히 확장하려는 데서 생겨난다. 자기의 안전과 영원한 존속 욕구를 신격화하는 것이다. 삼성 자체가 비자금을 비축하는 이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안정 욕구의 신격화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물신 숭배는 조직이나 기업의 멸망을 가속화시키는 원천이다. 한 기업의 영속적 존속은 비자금에 의해 가능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공평과 정의를 보좌로 삼는 하나님나라와 견고한 동맹을 맺음으로써 성취되지 돈을 통한 권력 매수, 양심 매수를 통해 결코 성취될 수는 없다. 또한 가난과 불편을 견디는 능력이 있다면 '돈 숭배교'에 빠지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물신 숭배의 본거지인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그리는 묵시록이다. 여기서 두 번씩이나 "무너졌도다"라는 선고를 받은 나라는 큰 성 바벨론이다.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본거지며,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동굴이라고 불린다(2절). 바벨론은 땅의 왕들과 음행하여 정절을 더럽힌 음행의 대가로 받은 부로 땅의 상인들(23절에 따르면 왕족들)을 치부케 했다는 명성을 들었다(3절).

그러나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 바 되었다(5절). 음녀 바벨론은 땅의 상인들로부터 온갖 상품을 사들였는데 그 상품 목록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 상품들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었다(12~13절). 사람들의 목숨, 영혼, 인격이 바벨론이 매입한 상품이었다. 이 구절은 바벨론이 인격과 영혼을 매입해 노예 무역을 했다는 말로 이해된다. 동시에 그것은 바벨론 체제에 저항하는 의인들의 목숨을 빼앗는 살상 행위를 함의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음녀 바벨론 중에서 발견되었다(24절). 바벨론은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외치는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죽이고 부를 탐하고 축재하고 사치와 번영을 누린 도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성 바벨론을 하나님께서는 파괴시킴으로서 심판하셨다(20절, 계 14:4~5, 8). 음녀 바벨론은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으로서(14:15~18)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대변하는 예언자들과 성도들을 죽여 버림으로써 방해받지 않고 얻은 부로 자기 영화화, 자기 영속화를 꾀하며 땅의 왕들과 견고한 동맹을 이루었으나, 하나님은 홀연히 그 바벨론을 파멸시켜 버렸다. 사람들의 영혼까지 매수하여 노예화하는 음녀 바벨론을 하나님은 처참하게 심판하셨고 파멸의 바다로 집어던지셨다.

이것이 물신 숭배자의 말로다. 물신 숭배의 본거지 음녀 바벨론은 자신이 범한 죄악과 음행의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영원히 번영할 것 같은 부를 손에 넣었으나 홀연히 망한다. 돈의 힘으로 영혼을 사들이고 국가 기관의 양심을 통째로 매수하는 재벌 기업의 불법 행위와, 가난한 자들이 내지르는 아우성에 전혀 응답이 없는 불의한 정부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홀연히 망하는 운명이 엄습한다는 것이다.

삼성 숭배 마법 깨울 예언자적 사명자

삼성 숭배의 마법에서 국민을 깨워야 할 사명자로서의 예언자적 지식인의 분발을 기대하며 장 폴 사르트르(<지식인을 위한 변명>)와 에드워드 사이드(<권력과 지식인>)에 따르면, 지식인의 핵심 조건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거부하는 비판 정신이다. 특히 사이드는 지성인은 언제나 자신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분명하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절대적으로 권력에 흡수 고용되지 않고 언제나 주변에 머물러야 하며, 어떤 권력이나 권위라도 그들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들 만큼 독립적이고 비판적으로 행동할 것을 주장한다.

   
 
 

▲ 김회권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사이드는 지성인들은 애국적 민족주의와 집단적 사고, 그리고 계급적·인종적·성적인 특권의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며, 보편적 진리를 확산하기 위하여 특정 인간들을 특권적으로 우대하는 안이한 확신들을 초월하기 위해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의 사명을 수행할 용기는 인간 스스로에게서 연원될 수 없다. 하나님의 절대적 구원을 경험한 지식인들만이 이런 의미의 고독한 그러나 보편적인 지식인의 기개를 획득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점차로 기업체, 국가 기관, 정당 등의 권력에 고용된 유기적인 지식인들로 가득 차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주장을 각종 논리와 통계와 전통적 지혜의 이름으로 주창하고 있다. 이런 지식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지식인의 구원은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영적 개안을 의미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계급, 국가적 기업적 특권으로부터의 창조적 탈출을 통해 보편적인 진리를 설파하는 사명인으로 거듭나는 경험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 폐쇄적이고 자기 복무적인 삼성 같은 조직체들로 가득 차 있다. 당파적 이익을 초월하는 진리를 말하는 의인들이 씨가 말라가고 있다. 모두 다 정신적으로 삼성 지향적인 기생적인 인간형으로 변질되어 간다. 물신 숭배적 자기 조직 존숭에서 벗어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무한 증식적 자기 확장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예언자적인 지식인이 더없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런 예언자적 지식인은 삼성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국가 기관에서도, 다른 기업체들에서도, 그리고 세속화되어 짠맛을 잃어버린 교회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김회권 / <복음과상황> 발행인,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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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지난 20여 년 간 함께 공들여 쌓아 올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족화해와 통합의 기반이 단 1년 여 만에 이토록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처절히 체험하고 있다.

권력기관 및 공권력의 권위주의는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사법은 최소한의 공정성도 상실한 채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법을 지키라’ 윽박지르고, 조금만 비판적이면 방송도, 통신도, 인터넷도 쉽게 처벌하며, 조금씩 쌓아올려 가던 사회복지의 토대는 한순간 무너져가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쌓아온 소중한 가치들이 오직 막개발을 통한 경제성장, 이 단일한 정권적 가치 앞에서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통탄스러운 것은 민족화해와 평화의 기초가 산산조각 나고 있다는 것이다

1. 지금의 잘못된 기초는 분명 이명박 정부가 세웠다.

지금 남북관계는 더 이상 악화되기 힘들만큼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명박 정부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다른 모든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대북, 통일정책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임 정부의 것이라면 무조건 부인하는, ‘정책 아닌 정책’을 만들어 스스로 갈 길을 묻어 버렸다.

지난 6공화국 때부터 시작되어 10년 간의 오랜 산고 끝에 조금씩 꽃피워가던 남북화해, 협력, 공존의 기틀은 ‘햇볕정책=북한퍼주기=친북/좌파정책’라는 단순한 공식 하나에 묶어 한 순간에 폐기처분해 버렸다. 그리고 공식적 대북/통일정책이라고 만든 ‘비핵개방 3000’정책은 비핵과 개방의 길로 이끌어갈 수 있는 현실적 이정표는 없이, ‘당장 핵을 없애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개방을 하면, 북한 1인당 GDP를 3000달러까지 만들어 주겠다.’는 당근 같지만 사실은 우롱에 불과한 말로 대신해 버렸다. 전쟁까지 치르고 지난 60여 년간 죽기로 싸워왔던 남북관계 가운데서 ‘당장 고분고분해지면, 최소한 먹고는 살 게 해 주마.’는 식의 시나리오를 대북정책이라 한다면 과연 대화를 하자는 것으로 보이겠는가?

그 속내를 보이듯이 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7.4남북공동성명(박정희 정부), 남북기본합의서(노태우 정부)는 계승한다면서도, 유독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 정부)과 10.4선언(노무현 정부)만큼은 분명한 계승의지를 회피하고 늘 은근슬쩍 넘어갔다. 그것은 두 선언을 통해 지난 10년 간 남북정부가 함께 만들어낸 모든 대북화해정책을 거부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지난 10년 간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였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지금 거의 좌초의 위기를 당했다. 현 정부와 수구언론들은 마치 이 사업이 북한정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방적으로 혜택을 베푸는 ‘북한 퍼주기’의 전형으로 선전해 왔다. 이건 정말 어불성설이다. 우리 남측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꿈에서도 그릴만한 아름다운 금강산’에 불과하지만, 사실 그곳은 잠수함 기지를 비롯한 북한 해군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 북한의 자존심이자 전략 요충지에 드나드는 대가로 지급되는 관광대가가 매달 100만 달러 정도니, 일 년에 고작 12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개성은 북한 유일의 고속도로를 통해 심장부인 평양까지 가는데, 겨우 2시간 거리에 있고 주변에 인민군 6사단과 64사단, 그리고 62포병여단이 주둔하고 있는 전략적 사활지역이다. 무엇보다 62포병여단은 서울 용산까지 사정거리에 두고 시간당 1만발 안팎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무서운 장사정포를 보유한 최정예 부대다. 개성공단은 바로 이러한 군사기지와 무기들이 배치되어있던 적진 한 가운데에 들어서서 남측 자본과 북측 노동자들이 함께 협력해 만든 화해의 토대가 되었고, 적대 국민이었던 남측 관광객들은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리고 이 남북협력사업을 위해 북한군은 불가피하게 그러한 무기들을 10km이상 후방으로 물려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놀라운 기적을 위해 남측이 지불하는 비용도 역시 연간 12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금강산과 개성공단 비용을 합해야 연간 2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400억원이 채 못된다. 이 정도면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를 사는 비용인데도 값은 ‘껌 값’이 아닌가? 400억원은 08년 서울시 예산 19조 4343억원의 1/485이다. 또 2009년 우리나라 예산 284조5000억 원에 견주어 보면 1/7112에 불과하다. KF-16 전투기 한 대 가격이 426억원이니, 남북평화 만들어 전투기 한 대 덜 사면 딱 떨어지는 돈이다.

요즘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라고 쉽게들 말한다. 그렇다. 실패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정책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막아 놓아 성공할 수가 없는 정책이다. 햇볕정책은 현 정부에 의해서 정치적 타살을 당하고 있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노력해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근본부터 세부적 운영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잘못됐다. 자존심을 내세울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존과 나아가 한민족, 동북아의 번영을 위해서도 화해협력 기조로 극적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2. 북한정권의 중심에는 백성이 없다.

그토록 우려했지만 북한은 너무도 의연히(?) 결국 로켓을 쐈다. 로켓실험이 궤도를 돌고 있는지, 예상 사거리에 도달했는지는 처음부터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예상대로 한미일 세 나라는 공조를 이뤄 북한제재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북한은 전략적으로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달성했다. 1994년 1차 핵위기 때나 1998년과 2006년 미사일 발사 때나, 2006년 핵실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로켓 실험도 기술적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이 전략적으로 기대했던 효과는 충분히 얻었다.

아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은 자신감에 차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성공한 위기전략, 변함없이 위력을 발휘하는 벼랑 끝 전술에 스스로도 감격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눈앞의 정권적 전략에는 거듭 성공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민족공동체 운명이라는 관점에서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 북한은 모든 면에서 수세에 처해있고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기에 기본적으로는 자기 보호적이고, 체제유지 전략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된다. 전략적으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정권과 체제의 방어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백성의 안위쯤은 쉽게 내칠 수 있어 보이는 몰인정한 단호함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이미 60여 년이 넘게 한 체제를 지배해온 기득권자들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개혁과 변화를 위한 조그마한 시도를 보이다가도 조금만 손해가 날 것 같거나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자기 것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우리사회 모두가 지켜야할 가치’라고 선전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조금 개혁적인 실험들을 해 보았지만,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수구세력들이 이명박 혁명(?)을 통해 단 1년 만에 총체적으로 뒤집으려 하는 모습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김정일 정권 역시 우리 사회가 보기에는 급진적이지만, 60여 년 동안 권위주의적으로 유지된 북한사회에서 본다는 엄연한 보수, 수구정권이다. 그래서 지난 10년처럼 대북우호적인 한국정권이 유지되거나 유화적 국제 분위기가 조성되면 개혁과 개방을 위해 조심스러운 시도를 모색하는 듯 하다가도, 자기 지도자의 자존심과 체제비판적인 분위기가 조금만 조성되면 언제든 벼랑 끝으로 달려가 “모두 함께 죽자”고 소리를 친다.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든 남북협력 정책을 무너뜨리려는 판에 박왕자 씨 사건처럼 금강산 폐쇄의 정치적 동기를 제공하거나, 개성공단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정치적 흥정꺼리로 만든 것은 이명박 정부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다. 그럴 때마다 지금껏 북측과 협력해 왔던 남측 파트너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솔직히 말한다면 북한은 지금 큰 것 한 방만 기대하고 있다. 그것은 ‘자질구레하게 공단이니 남북협력이니 하며 남한 따위는 상대할 것 없다. 미국과의 수교, 한 방이면 끝난다.’는 대박주의다. 한국에 대해서는 항상 자주성을 요구하지만, 북한 정권 역시 조금만 수가 틀리면 언제든 ‘通美封南'(미국과만 대화하며 남한은 따돌리는 전략)으로 돌아가는 매우 사대적인 발상이다. 통미봉남 전략은 결코 옳은 전략이 아니다. 그들의 구호처럼이나 ‘우리 민족끼리’는 수월할 때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지켜야할 원칙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제 기껏 자기 정권 방어가 아니라, 2,300만 인민들의 안위를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미 3세대 세습을 진행하고 있지만 자기 백성에게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위대한 지도자’로서 백성의 안위와, 대남 파트너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지금 고민해야 한다.  

3. 아직은 기회가 있다.

개인이나 국가, 민족 가릴 것 없이 세월이 흘러 “그 때 좀 더 잘할 걸!”하며 후회하지만, 이미 기회를 잃어 한탄할 때가 있다. 지난 20여 년간 남과 북은 국제적 냉전종식과 시대흐름을 같이 하여, 민족공존과 번영을 향해 갈 수 있는 몇 번의 호기를 아쉽게 놓쳤다.

노태우 정부 때 북방정책에 기반 한 91년 남북한 유엔공동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발표는 의미 있는 첫 출발이었다. 이어 등장한 문민 김영삼 정부는 한완상 총리를 내세워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인도하고 마침내 94년 김일성 주석과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는 등 결정적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조문파동을 비롯해 최악의 북한 식량위기 때도 방관하는 등 이후 임기 내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듯 한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 스스로 기회를 내 버렸다. 이제 1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장로대통령이 민족이 공존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고 스스로 역사의 죄인이 되려하고 있다.

지금 동북아 상황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 부시정권은 집권 초부터 북한에 적대정책을 공언했고, 심지어 9.11테러 후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북한의 반응마저 깡그리 무시하며 스스로 대화의 길을 끊었다가, 핵도, 미사일 억제도 다 실패한 후 임기 말 뒤늦게 대북유화로 돌아서려다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여기엔 김정일 위원장도 한 몫 크게 했다. 그는 2000년 남북정상 회담 후 심지어 조중동 조차 남북화해협력의 거센 물줄기를 거역할 수 없었던 그 좋은 기회에 더 좋은 시기, 더 큰 몸값만 기대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대남창구가 막혔던 그 시절, 북한은 상대적으로 우호적일 수 있는 민주당 클린턴 정부와 적극 협력을 모색했어야 했는데, 그의 임기 내내 신경전을 벌이다가 클린턴 임기 말 뒤늦게 제네바 합의 등을 이뤄냈으나, 그 합의는 이후 8년을 집권한 부시정부 동안 다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허망함은 대남관계에서도 또다시 재현돼 지난 2007년 가을 돌연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과 2차 정상회담을 통해 좋은 합의들이 있었지만, 이 역시 노 대통령의 임기 말로 힘도, 인기도 다 떨어져버린 뒤였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은 엄연히 이명박 씨다. 그 다른 파트너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씨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힘겨루기 막전막후에 엄연히 2,300만 북측 인민들과 4,800만 우리 국민들이 있다. 우리는 100여 년 전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줄 몰라서 거듭 외세의 힘만 의지하다가 결국 식민화와 분단, 전쟁을 겪어 왔던 것처럼 이제도 스스로 문제를 풀지 못해 주변 강대국의 도움만 바라보다가 민족공멸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 그러나 두 지도자들의 지혜로운 선택과 우리 백성들의 현명한 책임 여하에 따라서 포용력 없는 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된 대한민국과 총체적 부실에 빠져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넘어 평화와 공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새로운 통일조국을 새롭게 만드는 하늘이 주신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우리의 선택 속에 아직 기회는 있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사무총장/교회개혁실천연대집행위원/통일시대평화누리실행위원)

*  이 글은 복음과 상황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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