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맘몬주의에 대항하여 하나님나라운동 블로그 - 현재 우리 사회는 맘몬주의에 물든 기독교신학과 비성경적 신앙이 판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하나님나라 운동가들이 이 블로그를 만들고 그들과 싸워보고자 한다. 봄풀내음


 
 
말과 삶으로 교회 개혁을 열망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남오성 신임 사무국장과 정운형 전 사무국장 인터뷰

입력 : 2010년 01월 03일 (일) 00:09:28 [조회수 : 346] 김세진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남오성 목사(좌)와 정운형 목사는 인상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교회 개혁을 하기에 너무 순해 보인다고 하지만 삶에서 개혁을 해온 경험에서 개혁의 힘이 나온다. ⓒ 뉴스앤조이 김세진  
 
말한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다. "말과 삶이 나란히 간다면 그것은 철학의 완성이다"는 베네딕트 수도회 조안 치티스터의 말을 교회 개혁 현장에 적용한다면, 개혁을 외치는 말과 삶이 나란히 가야 그것이 개혁의 완성일 것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전 사무국장 정운형 목사(40)와 현 사무국장 남오성 목사(41)는 한국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시도를 각자의 자리에서 해 왔다. 그렇기에 이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외치는 소리는 공허하지 않다.

정운형 목사는 나름대로 안정적인 중형 교회의 부목사 자리에서 나와 3년 동안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다시 작은 교회의 부목사로 돌아갔다. 남오성 목사는 세습하라는 교회에서 굳이 나와 교회 개혁의 최전선에 있는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왔다. 권력과 자본이 집중된 교회와 교권을 감시하고 자정하라고 외치는 일은 거친 일에는 틀림없다. 남오성 목사 스스로 개혁연대를 '특공대', '총알받이'라고 부른다. 알면서도 무슨 이득을 보자고 특공대에 자원했을까.

부흥하는 교회에서 떠나고, 세습 유혹 떨치고

정운형 목사는 안정적인 중형 교회의 부목사 자리를 내놓고 나왔다. 교회 회복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담임목사의 전횡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많은데, 정 목사가 맡은 부서는 사람이 많아졌다. 오래 고민하다가 "교회가 엉망인데 혼자 사역을 잘하고 있는 게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담임목사는 "개척을 시켜주겠다"며 붙잡았지만 뿌리치고 나왔다. 사임한 후에도 오랜 시간을 기도한 뒤 담임목사를 찾아가 충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교회를 나온 후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가자 정 목사의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으셨다. 중대형 교회에서 안정적으로 사역하기 원하는 어머니의 바람과 다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께 "교회의 허물은 내 아픔과 같고, 그 기도 제목은 곧 어머니의 기도 제목"이라고 설득했다.

남오성 목사는 교회를 세습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기까지 갈등이 심했다. 교회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세습해도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최근에 교회는 남 목사로 인해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남 목사는 개인 구원에 집중하던 교인들의 시각을 사회 참여로 확장시키기 위해 애썼고, 담임목사인 아버지를 계속 설득했다. 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교인들이 남 목사를 잘 따랐다. 남선교회가 장애인을 찾아가고, 청년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섬기고,  고난 받은 이들을 위한 성탄 모임 등에 함께하는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지금 교회를 떠나면 그마나 있었던 개혁의 움직임이 도루묵이 될 것 같아서 갈등했다. 반면 마음 한구석엔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를 물려받으면 최소한 평생 굶지 않고 애들 대학 등록금 걱정은 안 하고 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이 깊어져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분에게 조언을 구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도 물었다. 어떤 사람은 가지 말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런 세습이라면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러 어찌하든 좋다고도 했다.

동일한 처지였던 김장생 박사를 만났는데, "남 목사가 교회를 물려받는 게 이 교회에는 유익할 수 있지만 하나님나라에는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타격이 있지만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것에는 세습을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남 목사는 망설임 없이 세습을 포기했다.

독단적인 목사, 가식적인 교수가 바로 나

정운형 목사와 남오성 목사가 교회 개혁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생뚱맞은 일이 아니다. 그들 삶의 연장선인 셈이다. 본인이 살았던 대로 한국교회에 말하기 위해서고, 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기도 하다. 하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 나날이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 개혁연대 7,000인 찾기 프로젝트 전국 투어하면서 지방의 분쟁 교회를 찾아 예배하고 모임하던 사진. 사무실 직원들이 한사코 사양해도 지방에 있는 개혁연대 회원들은 멀리 찾아 왔다며 밥을 사려고 했다. ⓒ 뉴스앤조이 김세진  
 
정운형 목사는 교회 문제를 상담하면서 자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어 힘들었다. 독단적, 파행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난 것 같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고 거듭 채찍질하면서 성찰하려 애썼다.

남오성 목사도 웨신에서 교수로 있을 때, 허위와 가식이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교수가 되니 사람들이 엄청난 권위를 실어줬다. 같은 말을 해도 이전과 다르게 주의 깊게 경청하고 모두 꾸벅 인사했다. 연봉도 괜찮았고 사회의 존경을 받는 자리였다. 어느새 즐기고 있는 자신을 봤다. 그런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기에 교만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에서 추방당하고, 교수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운형 목사와 남오성 목사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사역하다가 한계에 부딪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 목사나 남 목사는 이를 실패라고 생각하기보다 사명이 거기까지려니 생각했다.

정운형 목사는 탈북자를 돕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추방당하면서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탈북자 사역에 관심이 있었기에 교인들과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행을 결심했다. 정 목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20여 명이 함께 모이던 가정 교회가 공안의 단속에 걸렸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이 위법이다. 같이 일하던 중국인 전도사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따귀를 맞고 협박을 당하기도 했지만 동료 선교사의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

조사 끝에 바로 추방을 당해 공항으로 가는데, 마음이 허탈했다. 1년의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절한 무기력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중국에 가서 탈북자들을 돕겠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무언가를 하실 것이다 하는 마음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기대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하게 쫓겨나면서 마음이 어찌나 절박했던지, 공항까지 동행한 공안에게 마지막으로 전도했다.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 목사는 중국에서의 시간을 통해 교회 개혁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에서 초대 교회 형태의 '날복음'을 접했는데 그에 비해 한심하기 그지없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봤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당장 생존하는 문제로 고민하며 "하루라도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며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교회 건축과 직분자 임직식에서 돈 내는 것 때문에 싸우는 모습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다. 그 경험을 하니 개혁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남오성 목사는 사실 교수가 되기엔 조금 부족한 스펙이었다. 박사 과정을 공부하다가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할 수 없이 휴학하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웨신에서 교수와 기획처장 제의를 받았다. 근본주의였던 웨신을 개혁적으로 바꾸는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남 목사가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일의 진행을 맡았다. 웨신이 개혁연대, 성서한국, 성토모 등과 제휴를 맺고 '기독교 경제학과 사회 윤리' 같은 과목을 개설한 것도 남 목사가 있을 때 일이다.

남 목사는 지난 2월, 3년여 일했던 웨신 교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모두가 선망하는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지만 남 목사는 홀가분하다고 했다. 교수라는 옷이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옷을 입으면 뒷목이 당기는 듯 불편했다. 학교에서 나오면서 "하나님이 가식적인 것을 털어버리라고 좋은 자리 주셨나 보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

   
 
  ▲ 남오성 사무국장이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볼 것인가' 포럼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 뉴스앤조이 유연석  
 
웨신에서의 경험은 남 목사를 교회 개혁의 현장과 연결해 주었고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해 주었다. 연봉이 괜찮고 존경받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일종의 자기 싸움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개혁 운동의 교두보가 되었다.

교수 자리에서 나왔다고 남 목사가 신학 교육을 통한 교회 개혁 운동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웨신에 있을 때도 활동가였고 지금도 활동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개혁연대에서도 특히 교육 사업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교육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인들과 함께 교회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내 좌표가 어느 위치에 있고 내 임무와 교회 임무는 무엇인지를 아는 역사의식이 있으면 문제를 달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가 중세 시대와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둠이 깊기에 희망도 있다. 남 목사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있다"는 말을 인용했다.

교회 분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현장에 있기에 감사

이제 인수인계한 지 한 달여 지났는데 정 목사는 아직 교회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담했던 교회의 이야기가 아직 머릿속에 꽉 차 있다.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교회 문제에 관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왜곡된 구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것이 사무국장의 일이다. 하지만 안 좋은 사건을 주의 깊게 들으니 감정이 이입되어 덩달아 힘들다. 그들 문제는 대부분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힘을 얻기도 하지만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너무 지쳐 상담하기 싫은 마음이 생겼다. 힘든 마음을 안고 강남제일교회가 여는 '양들을 위한 음악회'에 참석했다. 분쟁을 겪고 있는 강남제일교회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다른 교회 교인들을 초대해 위로하는 자리였다. 음악회에 참석한 교인들이 "땅 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찬양하는데 눈물이 났다. 교회에서 불의가 이기는 것 같아도 감춰진 것들이 밝히 드러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교인들이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교인들은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무국장으로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학자의 혀, 듣는 귀, 철면피 같은 얼굴을 달라고 기도했다. 개혁연대에 부임하기 전, 금식 기도를 하면서 마음에 이사야 50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의 기도를 하라는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도는 곧 하나님의 정의를 잘 설명하고 잘 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는 힘을 달라는 기도였다. 개혁연대 협동 사무국장으로 있는 지금도 그 기도를 하고 있다.

정 목사는 이제 뜨인돌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정 목사에 대한 기대감을 내보이지만 부담스럽다. 그동안 개혁 운동을 하면서 했던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댈 생각을 하니 두렵다. 개혁 운동의 기운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긴장감 있게 매사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단순히 목사라는 이유로 교인들이 교역자를 우대하는 것을 지혜롭게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목사와 교인이 하나님 앞에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오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아침에 즐겁게 출근할 수 있을까'와 '저녁에 보람찬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을까'였다. 지난 한 달여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없어졌고, 분쟁 교회 상담이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렵고 답답한 얘기를 참고 오래 들어주는 것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 목사는 이제 더 이상 <뉴스앤조이>에 실린 교회 문제 기사를 읽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눈물 흘리고 답답해하는 대신 직접 개혁 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

한국교회, 희망을 본다.

하나님나라운동/교회개혁 | 2009. 11. 30. 13:40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제가 속한 교회개혁실천연대 부설 교회문제상담소의 상담 사례를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몰상식한 일이 많아 입에 거론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흔히 말하는 파렴치범은 교회에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많은 내용은 목회자들의 부정과 불륜, 재물횡령, 거짓말 등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문제를 일으키는 목회자들은 벽창호처럼 일반 교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 자기가 말한 것이 곧 법인 양 호도하고 교인들에게 순종을 강요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교인들로서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말로 교인들에게 말한다. 이것은 목회 사항이므로 목회자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예배에 대한 문제이니 이는 건드리지 말라. 목회자는 하나님이 기름부으셨으니 괴롭하면 벌을 받는다. 등등,,,

만인제사장설이 보편적인 진리임에도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교인들을 바보로 취급하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또한 예배당 건축을 성전(聖殿)건축이라는 말을 포장하여 헌금을 강요하고 이를 통한 자신들의 업적을 쌓는데 혈안이다. 예배당의 크기, 교인의 수, 헌금의 액으로 교회의 서열을 매기는데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교인들의 반응 또한 가관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종이라 자청하는 사람들에게 종이 된지 오래고, 그들의 말이라면 사회에서의 상사의 명령보다 더욱 복종하며, 비상식적인 것도 은혜로운 것으로 합리화하여 넘어가는 현상이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의 모습니다. 교회는 이들의 사교장이 되어가고 있고,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의 계급화된 서열을 좇아 가식된 모습으로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정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며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교회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며 은혜롭게 하자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이미 관례화된 지 오래다, 비상식의 차원을 넘어 몰상식의 단계이다.

이제 교회개혁이라는 목적을 향해 뛰어본지 1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나름 보람을 느끼며 운동을 해왔지만 너무나 상황은 절망적이다. 군부독재를 살던 선배들의 시대상황을 보는 듯하며 선지자들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보는 것 같다.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그러나, 황무지 같은 한국교회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날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의 우상화된 가치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자라나리라고 본다. 이 한국교회의 무덤을 뚫고 나갈 교회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자신들의 권위를 부정하며 새로운 권위를 쌓은 목회자들이 분투하고 있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투쟁하는 교인들이 있기에 가능하리라고 본다. 또한 이제는 이 개혁을 뒷받침할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기독 경영을 바탕으로 하는 착한 소비와 문화운동, 그리고 언론 매체들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말씀 위에 서서 우리는 그 희망을 향해 뚜벅 뚜벅 가야한다.









고상환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장)
:
선교, '방법'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
언덕교회 선교부, 독서 토론·후원 단체 초청 강좌·선교 심포지엄
(이명구 기자)

보통의 한국교회는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총동원 주일'이나 '전도 대잔치'라고 이름 붙여진 행사가 봄과 가을마다 있다. 전도 활동을 지원하는 세미나를 하는 교회도 많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큰 차이는 없다. 교단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몇 백만 명을 넘기자는 배가 운동을 교단마다 하고 있다.

언덕교회(박득훈 전임목사)는 어린이까지 합쳐도 200명이 채 안 되는 교회다. 교회 크기에 비해서 언덕교회는 유명한 편이다. 작년 MBC '100분 토론'에 박득훈 목사가 패널로 출연한 이후 기독교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언덕교회 홈페이지는 방문자가 폭주해 다운되기도 했다. 방송을 보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이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언덕교회가 10월 25일 선교 심포지엄을 열었다.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전도 폭발'이나 '전도 전략 세미나' 같이 전략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전도 자체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인식을 전환하려는 취지였다.

언덕교회 선교부장 이용관 집사는 "막상 '선교'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는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생각하기 쉽다. 특히 언덕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은 이런 생각 때문에 언덕교회는 선교에 관심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며, 이런 분들에게 선교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 언덕교회 선교부가 '선교하면 생각나는 것'을 조사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이를 위해서 언덕교회 선교부는 1년에 2회 선교에 관한 책을 선정해 독서 토론회를 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함께 읽었고, 후반기에는 짐 월리스의 <회심>을 읽고 공부할 예정이다. 또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청년아카데미,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현대기독교아카데미 등 언덕교회에서 후원하는 사회 선교 단체들이 직접 교회를 찾아와 자기 단체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번 선교 심포지엄도 선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다.

언덕교회에서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선교부와 사회복지부이다. 선교부는 특히 사회 선교와 한국교회 현안에 대해 공부하며 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인식 전환에 주력한다. 사회복지부는 교회 내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지역 봉사 및 후원에 집중하고 있다.

교회 재정의 상당 부분을 외부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교회 예산의 20~25% 정도를 선교와 사회 복지에 사용했지만, 올해에는 30%까지 늘리기로 결의하고 이를 지켜오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일 예배를 한 후에 화곡동 교남어린이집, 마포 재가노인복지센터 등을 찾아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 선교 심포지엄에 참석한 언덕교회 교인들이 집중해서 경청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우리 교회의 선교를 다시 생각한다"
언덕교회, 선교 심포지엄 열고 교회의 선교 활동 고민

"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선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 틀린 건 아닐까"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언덕교회 선교 심포지움은 시작됐다.

언덕교회 교인들은 한국교회의 전도 활동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을 반성하고, 언덕교회의 선교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언덕교회 선교부는 심포지움을 준비하면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128명의 교인들이 설문에 응답했다. 교인들은 언덕교회에 출석하기 전에는 '노방전도'와 '개인 전도', '중보 기도' 등을 위주로 선교 활동을 했지만, 언덕교회에 출석한 이후에는 '기독교 시민 단체 지원'과 '사회봉사 단체 지원 활동', '성경 공부', '공의로운 정치를 위한 참여와 관심' 등의 선교 활동을 주로 했다고 답했다. 또 교인들은 언덕교회가 '해외 선교'나 '복음 전도'보다는 '사회참여'와 '구제·봉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선교부는 "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인식이 언덕교회에 와서 변했다"고 분석했다.

   
 
  ▲ 박득훈 목사는 복음 전도와 사회 갱신의 선교 개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박득훈 담임목사가 '성경이 말하는 선교'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박 목사는 복음 전도를 강조한 좁은 의미의 선교와 사회적 갱신을 강조한 넓은 의미의 선교의 개념을 구분하고, 이 두 가지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선교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 양진일 목사는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교"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이어서 양진일 목사(가향공동체), 송강호 교육원장(개척자들), 정정훈 공동대표(연구 집단 카이로스)가 발제를 했다. 발제자들은 한국교회의 선교 활동에 문제가 있다며 선교에 대한 인식 전환을 주장했다.

양진일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가 "복음을 살아내는 신앙인과 교회의 부재 때문이다"고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속의 가치에 지배받거나 굴복하지 않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1차적 선교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교다"고 했다.

   
 
  ▲ 송강호 교육원장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 이웃들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 곧 선교"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송강호 교육원장은 "묻지도 않고 가입을 요구하는 보험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 방식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거품화 현상을 보여준다. 협박하고 겁주는 전도가 아니라, 자유롭게 판단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전해야 한다"고 했다. 또 "예수는 약하고 가난한 자, 억눌린 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역했다. 하나님과 우리 자신, 이웃들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 곧 선교다"고 했다.

   
 
  ▲ 정정훈 공동대표는 "복음은 폭력의 자리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자리에 있을 때 제 모습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정정훈 공동대표는 "비기독교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변화시켜야 할 존재로만 그들을 대하고 있다. 이미 주류 세력이 되어버린 기독교가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논리로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했다. 이어 "1세기 초대교인들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이었다. '만물의 찌꺼기'라고 자신을 고백한 바울처럼 복음은 폭력을 휘두르는 힘의 자리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자리에 있을 때 제 모습을 찾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포기할 수 없다면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발제가 끝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언덕교회 교인 김동규 씨는 발제자들이 선교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 내부의 자정과 기독교 외부와의 관계로 나누고 있다고 지적하며, 선교에 대한 문제 해결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발제자들은 한국교회의 선교 활동이 내부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외부적인 모든 사역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득훈 목사는 "복음 때문에 자기 자신이 변한다면 당연히 외부의 변화를 위해 힘쓸 것이다. 진정 예수를 알고 만났다면, 우리가 밖으로 어떻게 안 나갈 수 있겠는가"라며 선교는 교회의 자기 갱신부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

목사도 천국 갑시다

하나님나라운동/교회개혁 | 2009. 7. 17. 14:12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목사도 천국 갑시다!"
[칼럼]목사의 원래 자리 찾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

언젠가 어느 목사님들의 모임 슬로건이 '목사도 천국가자'라는 말을 듣고 공감하며 크게 웃었다. 내가 '우리도 천국가자'는 목사님들의 구호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목사들이 천국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교회문제상담소를 통해 수많은 '문제(?) 목사'들을 접하다보니 이런 발칙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내담자 A집사는 지인을 전도하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소개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 교회 담임목사의 인격이 너무 부끄러워, '우리 교회 나오지 말고, 자네 동네 교회로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 교회 목사의 인격이 너무 상식 이하라며, 교회 안 다니는 일반인들(?)의 평균 수준만 됐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사실 모든 목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목사님들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러면 '모든' 목사들이 자신을 그 '적지 않은 선한' 목사로 생각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말하기는 했다.) 물론 글을 쓰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나 자신도 목사로서 그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을 가끔 자각하게 된다. 삶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선한 목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돌아볼 일임을 고백한다. 작년 한해 동안 200회가 넘는 교회 문제를 상담하면서 절감한 바는, 목사들이 심심히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사의 이러한 모습이 교회 분쟁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고치는 목사가 '믿음'이 좋다?

한국의 대다수 교회가 지닌 신학에 따르면, 우리도 천국 가자고 외치는 목사는 목사로서 자격이 없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런 나약한 믿음으로 어찌 목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사고 치는 목사'는 믿음이 투철하다.

오래 전 여자 문제와 돈 문제로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고도, 자리를 지키며 버티던 B목사에게 선배 목사가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지옥가고 싶으냐'며 충고를 했단다. 그러자 B목사 왈,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습니까?' 우리도 천국 가자는 목사님들의 외침이 반가운 것은, 보기 드물게도 이분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분들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왜 이렇게 상식 이하의 목사들이 많은가? 개혁연대에 제보되는 목사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는가? 아마 처음부터 '진정성' 자체가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내담자들이 심심치 않게 하는 이야기가 '우리 목사님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좋은 분이었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변하더란다. '변화'가 아니라 '변질'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성도들의 과도한 섬김이 목사를 망친다

내담자 C장로의 분석에 따르면, 성도들이 맛있는 것, 좋은 옷, 좋은 차를 갖다 바치고 섬겨주니까 교만해져서 그렇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목사로서 지금도 얼마나 과분한 섬김을 받고 있는가. 가끔 그런 과분한 섬김을 당연하게 받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심지어 어떤 목사들은 스스로를 '주의 종님'이라고 부르며, 섬길 것을 강요하기도 한단다. '주의 종'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처음 목사가 될 때 초심이 어떠했든지, 생각이 이렇게 뻔뻔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에게서 다른 뭘 더 기대하겠는가.

설교에 대한 피드백도 큰 역할을 한다. 우리 한국 사회, 한국교회에서 누가 설교자에게 부정적 반응을 보이겠는가. '은혜 받았습니다' 일색이다.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는 드물 것이다. 얼마 전 S교회 장로들이 자기 교회 담임목사가 다른 목사 설교문을 그대로 베껴 설교하는 걸 알게 되었단다. 장로들이 모른 채 하며 '우리 교회 상황에 맞는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하자, 목사는 오히려 '내가 우리 지역에서 설교 제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역정을 내더란다. 이런 지경이다보니 성도들 앞에서 '모른다' 소리도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는 듯 착각한다. 심지어는 성도들의 사업에까지 관여하고, 부동산 투기 상담까지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대형 교회 목사가 설교 중에, '자신이 교인들에게 사라고 땅을 지정해주면 땅 값이 몇 십 배 오른다'며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이래저래 목사들은 교회라는 성 안에 갇혀서 정작 세상이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목사들의 의식이 세상의 상식으로부터 격리되어 게토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들이여, 착각하지 마시라.

목사를 무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목사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 목사 스스로뿐 아니라 성도들이 목사를 하나님과의 중보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마치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성도들의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의 종교의식 밑바탕에 깔린 무속신앙에서 뿌리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일부(?) 목사들이 이를 악용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목사들 자신이 스스로를 성도들과는 다른 어떤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무당이 된 목사에게 도덕성이나 윤리성은 중요하지 않다.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과 선포는 오히려 불편하다. 기적적인 체험이나 능력을 홍보하고, 강한 '카리스마'로 성도들을 압도하는 그런 목사가 능력 있는 종이다. 성도들은 이런 목사의 능력과 카리스마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목사들의 능력으로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병든 육신이 건강해지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대한다. 능력의 종! 기복주의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목사가 아닌가? 하지만 이로 인해 목사와 성도들 모두 심각하게 병들고 변질 되는 것이다.

목사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이 목사를 망친다

목사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 역시 목사를 병들게 한다.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헌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헌법'이라는 것은 한 국가 통치 체제의 근본이 되는 최고 법규를 말하는 것인데 버젓이 '헌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용어 사용에서부터 '헌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목사들의 권위 의식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러면 그 '헌법'의 내용은 어떠한가? 독소조항투성이다. 모든 권한을 담임목사가 가지고 있다. 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회의체의 의장을 담임목사가 맡는다. 장로교의 경우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의회장을 모두 담임목사가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헌법'에 보면, '목사의 의의'를 이렇게 규정한다. '양의 무리를 감시하는 목자', '그리스도의 사역자', '신약의 집사', '치리하는 장로', '교회의 사자(천사·계2:1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사신', '오묘한 도를 맡은 청지기' 등등.('헌법' 제4장 제1조) 이러한 내용은 타교단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하다. '헌법'에 따르면 목사는 법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감히 평신도가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다.

한국교회는 개 교회 목사에게 그런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이를 통제할 장치가 거의 없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다수의 목사들은 북한에 대해 목숨 걸듯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그들과 꼭 닮아 있는가? 비민주적이고, 반대 의견은 철저히 묵살하는 행태는 김일성 정권과 못지않다. 게다가 세습까지 하는 걸 보면 그야말로 독재다.

목사 제자리 찾아주기

이렇듯 왕처럼 섬김 받고, 자타 공히 하나님의 천사라 여기며, 무소불위의 법적 권한을 부여 받은 목사들이 겸손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자칫하는 사이 자신을 하나님 바로 다음 자리에 앉히기 쉽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기억하라. 절대 권한을 부여 받은 목사는 '부패'와 '변질'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저 추상적인 규정이 아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 목사 개인의 인격이나 믿음만을 믿고 맡기기엔 너무 위험하다. 교회도 위험하고 목사도 위험하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면, 거의 모든 한국교회에는 교회의 분란이 잠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목사들에게 그런 자리에 서게 되더라도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하라고 요구만 하면 될 것인가.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참으라 하는 격이다. 혹시 대단한 영성을 소유한 몇몇 고양이가 참아낼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고양이는 생선을 먹고 말 것이다. 현재의 이런 구조는 목사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성도들이 깨어날 것을 기대하겠는가. 성도들이 누구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라. 왜곡된 자기 정체성을 가진 목사들이 가르친 성도들에게 깨어나길 기대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목사가 겸손한 자세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교회에 민주적인 정관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민주적 정관 도입을 통해 목사, 혹은 소수의 장로에게 편중된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고, 교회의 주권을 성도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정관 도입만으로 교회 내 모든 비성경적인 권위주의 문제와 그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들이 일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민주적 정관을 도입해 운영하는 것은 교회 분쟁 원인인 목사에게 집중된 권력 문제와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민주적 운영은 건강한 목사,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목사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인 올바른 해석을 위한 말씀 연구와 선포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의 독재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실하다.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치는 중세의 사제주의와 권위주의에 저항했던 개신교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모든 권한을 향유하고 있는 목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을 인정하고, 교회의 주권을 교인들에게 돌려주어 성경이 기대하는 바, 민주적인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이다.(교회의 민주적 운영에 관하여는 백종국 교수의 저서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를 참고하라.)










정운형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

지난 5월 13일 총신대학교 제6회 죽산기념강좌에서 ‘박형룡의 교회정치윤리’란 제목으로 발제를 맡은 이상원 교수(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는 “광대회의의 권세는 지교회의 당회가 다룰 수 없는 사안에 한하여 행사되는 것에 제한되어야 한다. 광대회의를 ‘상회’라고 부르는 것은 바람직한 용어가 아니”라며 박형룡 박사의 견해를 소개했다.

▲ 이상원 교수 "광대회의를 ‘상회’라고 부르는 것은 바람직한 용어가 아니다."     © 뉴스파워 최창민

 이어 이상원 교수는 “사실상 한국교회에서는 광대회의를 ‘상회’라고 부른다. 광대회의는 지교회로부터 위탁받은 사안들과 지교회간의 사안들에 한하여 한시적이고 직임적으로 제한적인 ‘상회’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일 뿐 항구적인 상회는 결코 아니”라며 “오히려 지교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섬기는 기관일 뿐”이라고 총회의 역할을 규정했다.

 이 교수는 특히 박형룡 박사가 교회정치윤리를 신율적 지평 안에서의 ‘민주적 대의정치’라는 점을 일관성 있게 강조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대교회에서 담임목사는 제왕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부목사들은 그 밑에서 수종을 드는 위계구도를 형성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로마 카톨릭적인 계층적 성직계급화되어 가고 있다.”며 일부 대형 교회에서 나타나는 담임목회자의 제왕적 권위를 통한 계급화 현상을 비판했다. (이상 ‘뉴스파워’ 기사 인용)

 이것은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인 백종국 교수(경상대)가 수년간에 걸쳐 주장한 내용에 대한 신학자가 다시 확인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백종국 교수는 각 교단의 총회가 광대회의체라는 의미에서 각 교회의 정관이 각 교단 총회의 헌법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각 교회 모범정관제정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박형룡 박사나 박윤선 박사가 이러한 주장을 했지만 그동안 한국교회의 상회 우선주의에 묻혀 있었다. 그러한 주장은 한국교회의 성장 지향적인 모습 속에서 교단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는 주장으로 여겼으며, 이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소수로 전락하였다.

 백종국 교수는 그의 저서인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에서 한국의 개신교에 파고든 사제주의는 프로테스탄트의 복음적 맥락을 사로잡고 있는 바벨론의 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바벨론의 세력이 개신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힘을 과시해왔다. 지금도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이 세력은 정부의 권력과 영합하여 개신교를 움직이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그동안 몸집을 불려 힘을 과시하는 맘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카톨릭과 같은 교황을 중심으로 한 사제주의를 따라 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적 대의정치를 정착하여 새로운 물결을 만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총회나 노회를 교회의 상회로 왜곡하며 간다면 결국 교회를 줄세우기하고 교권주의자들의 욕심을 따라 이합집산하게 될 것이며, 교단을 정치적 집단으로 만들 것이다.결국 이러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총회나 노회는 각 교회들이 하기 힘든 사회봉사나 선교사업을 위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일명 ‘상회비’라는 이름의 회비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교회에서는 교회의 실정에 맞는 정관을 만들어 바르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되찾는다면 결국 한국 교회를 맘몬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바벨론에 사로잡힌 한국교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고상환 집사(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