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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몬주의에 대항하여 하나님나라운동 블로그 - 현재 우리 사회는 맘몬주의에 물든 기독교신학과 비성경적 신앙이 판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하나님나라 운동가들이 이 블로그를 만들고 그들과 싸워보고자 한다. 봄풀내음


 
 

통일부는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맘몬주의???/정치와 사회현상 | 2009. 12. 7. 14:43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정부부처 제자리 찾아주기③-통일부 편 

“통일부는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사진) 통일부앞에서 1인 시위중인 김종환목사(통일시대평화누리 전 사무국장)

통일부 홈페이지를 보면 자신들의 임무를 “통일부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합니다.”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요약하면 통일부는 통일과 그 기반 마련을 위해 남북대화와 협력에 힘을 기울이라고 만든 정부조직이며, 통일부 공무원들은 그 일을 하라고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와 지난 2년 가까이 통일부는 자신의 존립근거를 잊고 세월만 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통일부 장관은 통일과 남북화해를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백번 양보해서 올해 초까지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 북한의 로켓 발사, 6자회담 탈퇴 등 긴장요소들이 많았기에 적극적 조처를 취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고 치자. 그러나 올해 봄을 지나면서는 거의 일방적이라고 할 만큼 북한당국의 관계개선 의지가 두드러졌다. 피랍어부 석방, 현정은 현대회장 방북에 이은 금강산, 개성공단 재개의사,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고위급 인사 조문, 추석 남북이산가족 상봉, 6자회담 복귀 의사 등 작정하고 쏟아내는 것 같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그 때마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이 “약간의 변화는 감지되나, 아직은 근본적인 변화라고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도 아직은 때가 아니고,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도 착수할 때가 아니며, 남북정상회담도 노력할 이유도 없고, 이산가족상봉 계획도 없다. 그러면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농림부가 농촌경제가 회생할 전망이 없으니 당장 할 일이 없다거나, 교과부가 입시문제 해결의 근본적 전망이 보이지 않아 당분간 기다리겠다고 한다면 그런 망발이 어디 있을까? 남북간 근본문제 해결되지 않아 대화할 수 없다면 도대체 통일부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러니 없애야 한다. 

물론 그동안 현 장관도 한 일이 있긴 있다. 지난 9월 북한 황강댐 방류 사태 당시 아직 분명한 증거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방류는 의도를 가지고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혀, 이후 정부의 강경대응을 이끌었다. 그는 민간의 인도적 지원만이라도 허가해 달라는 요청에 ‘인도적 지원은 언제든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아직 북한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증거가 없어, 조사 중’이라고 말한다. 국제기구, 민간구호단체들조차 다 인정하는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정작 주무부서인 통일부가 여전히 조사만 하고 있다면 그런 통일부가 무슨 필요 있는가? 최근 민간단체들이 인도적 대북지원 협의를 위해 북측 민화협을 만나려던 계획도 통일부의 압력으로 불허되었다고 한다.

작년 통계를 보니 정관의 연봉은 각종 수당 등을 모두 합하면 1억 3239만원이다. 이 돈이면 5명 이상의 도시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고액연봉이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남북대화 위해 강연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이렇게 큰돈을 지출하느니, 차라리 통일부장관을 해임하고 그 돈으로 정부가 말끝마다 외치는 일자리 창출 위해 애쓰는 게 옳지 않은가?  

상황이 이런데도 내년도 통일부는 26% 대폭된 예산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대북 쌀 지원 등에 사용되는 남북협력기금 출연금은 3500억원으로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 동결됐지만, 통일부에서 사용하는 일반 예산은 1527억6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5.7%나 급증했다.”(이근우 기자, 매일경제신문 09. 11. 13)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쌓아 놓는 남북협력기금은 그조차 동결한 상태에서 통일부 일반예산만 잔뜩 인상해 놓았다. 2008년만 해도 남북협력기금 실제 사용액은 총 예산의 20%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역대 최저다. 통일부가 가장 중요한 남북관계개선 여건 조성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증거다.

새 정부 들어 정부조직개편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폐지될 위기에 처했던 통일부를 국민들이 살려놓았더니 할 일은 안 하고, 근본적(?) 상황변화만 기다리고 있다. 사실 현인택 장관 스스로도 인수위 시절 통일부 폐지를 주장했던 인물이니, 하는 일이 없는 통일부 폐지 주장은 사실상 내 주장이 아니라, 현인택 씨의 소신 아닌가? 도대체 경력이나 소신이나 활동 모든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친하다는 것 말고 하는 일이 없는 현 장관이 물러나든지,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할 의지가 없다면 통일부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국민의 아까운 혈세를 이제 그만 낭비해야 한다.









구교형목사(통일시대평화누리실행위원/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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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 제자리 찾아주기②-국토해양부 편 

“국토해양부는 소신대로 국토파괴부로 개명하라”

 


                                         (국토해양부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정운형 통일시대평화누리 회원)

                                             
공자는 세상을 바로 잡는 중요한 원리로 정명(正名)을 말하였다. 다시 말해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바른 이름을 붙여줘, 뜻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국토부의 임무․사명․존재이유’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아갈 풍요롭고 아름다운 국토를 조성하고, 5대양 6대주로 뻗어나가는 경쟁력 있는 교통물류체계를 구축하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국토해양부가 되자”

‘풍요롭고 아름다운 국토’ 그것은 단지 더 많은 길을 뚫고, 편의시설을 많이 만들고, 전국 구석구석마다 불로 밝혀 대는 것만이 아니다. 지나친 생활의 불편은 덜어야겠지만, 오히려 지나쳐 모자람만 못한 곳은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더 지혜로운 국토관리다. 더구나 스스로의 규정처럼 이 국토가 단지 우리 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라면 ‘지속가능한 개발’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토부에는 그런 개념들이 애당초 없다.

산골 오지에 이르기까지 시멘트로 흙을 덮어버리고, 멀쩡한 숲은 밀어 잔디심고 인공 연못을 만들어 놓고는 녹지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인공구조물을 뜯어 자연하천을 복원하는 게 대세임에도 멀쩡한 자연하천에 억지로 시멘트 칠을 하면서도 강 살리기라고 선전을 해댄다.

대통령과 정부기관들은 말끝마다 “법을 지키라”고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들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형정편의와 일시적 효과를 위해 온갖 탈법과 변칙을 일삼고 있다. 그 중심에 국토부가 있다. 앞서 살펴본 온 무분별한 그린벨트 해제, 수도권 막개발, 4대강 죽이기 사업 등 국토파괴공작들은 모두 대통령의 지시아래 국토부 장관이 실행하고, 환경부 장관이 설거지하는 세트플레이다. 국토부는 국토가 마치 자기 집 뒷마당처럼 언제든 제 맘대로 파헤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듯 전횡을 일삼고 있다.

정부의 역점사업인 보금자리주택 개발을 위해 국토부는 그린벨트 환경평가 등급을 근거 없이 낮춰 조정하였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는 막대한 예산을 숨기기 위해 일부사업을 법적 근거도 없이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버렸다. 또 지금까지는 그린벨트 막개발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일부 공기업과 지방공사에게만 허용하던 그린벨트 해제지역 개발사업을 준정부기관, 금융 공기업 등에도 허용하여 무분별한 막개발을 부추겼다.

그러니 이름을 제대로 바꾸자는 것이다. 국토를 파괴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알고 불철주야 열심히 일한다면, 그 존재의의에 맞게 ‘국토파괴부’라고 불러야 옳은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제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바른 판단과 삶의 기본이다. 바른 이름을 갖지 못하면 국민들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공자는 세상을 바로 잡는 중요한 원리로 정명(正名)을 말하였다. 다시 말해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바른 이름을 붙여줘, 뜻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국토부의 임무․사명․존재이유’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아갈 풍요롭고 아름다운 국토를 조성하고, 5대양 6대주로 뻗어나가는 경쟁력 있는 교통물류체계를 구축하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국토해양부가 되자”

‘풍요롭고 아름다운 국토’ 그것은 단지 더 많은 길을 뚫고, 편의시설을 많이 만들고, 전국 구석구석마다 불로 밝혀 대는 것만이 아니다. 지나친 생활의 불편은 덜어야겠지만, 오히려 지나쳐 모자람만 못한 곳은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더 지혜로운 국토관리다. 더구나 스스로의 규정처럼 이 국토가 단지 우리 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라면 ‘지속가능한 개발’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토부에는 그런 개념들이 애당초 없다.

산골 오지에 이르기까지 시멘트로 흙을 덮어버리고, 멀쩡한 숲은 밀어 잔디심고 인공 연못을 만들어 놓고는 녹지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인공구조물을 뜯어 자연하천을 복원하는 게 대세임에도 멀쩡한 자연하천에 억지로 시멘트 칠을 하면서도 강 살리기라고 선전을 해댄다.

대통령과 정부기관들은 말끝마다 “법을 지키라”고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들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형정편의와 일시적 효과를 위해 온갖 탈법과 변칙을 일삼고 있다. 그 중심에 국토부가 있다. 앞서 살펴본 온 무분별한 그린벨트 해제, 수도권 막개발, 4대강 죽이기 사업 등 국토파괴공작들은 모두 대통령의 지시아래 국토부 장관이 실행하고, 환경부 장관이 설거지하는 세트플레이다. 국토부는 국토가 마치 자기 집 뒷마당처럼 언제든 제 맘대로 파헤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듯 전횡을 일삼고 있다.

정부의 역점사업인 보금자리주택 개발을 위해 국토부는 그린벨트 환경평가 등급을 근거 없이 낮춰 조정하였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는 막대한 예산을 숨기기 위해 일부사업을 법적 근거도 없이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버렸다. 또 지금까지는 그린벨트 막개발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일부 공기업과 지방공사에게만 허용하던 그린벨트 해제지역 개발사업을 준정부기관, 금융 공기업 등에도 허용하여 무분별한 막개발을 부추겼다.

그러니 이름을 제대로 바꾸자는 것이다. 국토를 파괴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알고 불철주야 열심히 일한다면, 그 존재의의에 맞게 ‘국토파괴부’라고 불러야 옳은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제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바른 판단과 삶의 기본이다. 바른 이름을 갖지 못하면 국민들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공자는 세상을 바로 잡는 중요한 원리로 정명(正名)을 말하였다. 다시 말해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바른 이름을 붙여줘, 뜻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국토부의 임무․사명․존재이유’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아갈 풍요롭고 아름다운 국토를 조성하고, 5대양 6대주로 뻗어나가는 경쟁력 있는 교통물류체계를 구축하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국토해양부가 되자”

‘풍요롭고 아름다운 국토’ 그것은 단지 더 많은 길을 뚫고, 편의시설을 많이 만들고, 전국 구석구석마다 불로 밝혀 대는 것만이 아니다. 지나친 생활의 불편은 덜어야겠지만, 오히려 지나쳐 모자람만 못한 곳은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더 지혜로운 국토관리다. 더구나 스스로의 규정처럼 이 국토가 단지 우리 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라면 ‘지속가능한 개발’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토부에는 그런 개념들이 애당초 없다.

산골 오지에 이르기까지 시멘트로 흙을 덮어버리고, 멀쩡한 숲은 밀어 잔디심고 인공 연못을 만들어 놓고는 녹지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인공구조물을 뜯어 자연하천을 복원하는 게 대세임에도 멀쩡한 자연하천에 억지로 시멘트 칠을 하면서도 강 살리기라고 선전을 해댄다.

대통령과 정부기관들은 말끝마다 “법을 지키라”고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들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형정편의와 일시적 효과를 위해 온갖 탈법과 변칙을 일삼고 있다. 그 중심에 국토부가 있다. 앞서 살펴본 온 무분별한 그린벨트 해제, 수도권 막개발, 4대강 죽이기 사업 등 국토파괴공작들은 모두 대통령의 지시아래 국토부 장관이 실행하고, 환경부 장관이 설거지하는 세트플레이다. 국토부는 국토가 마치 자기 집 뒷마당처럼 언제든 제 맘대로 파헤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듯 전횡을 일삼고 있다.

정부의 역점사업인 보금자리주택 개발을 위해 국토부는 그린벨트 환경평가 등급을 근거 없이 낮춰 조정하였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는 막대한 예산을 숨기기 위해 일부사업을 법적 근거도 없이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버렸다. 또 지금까지는 그린벨트 막개발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일부 공기업과 지방공사에게만 허용하던 그린벨트 해제지역 개발사업을 준정부기관, 금융 공기업 등에도 허용하여 무분별한 막개발을 부추겼다.

그러니 이름을 제대로 바꾸자는 것이다. 국토를 파괴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알고 불철주야 열심히 일한다면, 그 존재의의에 맞게 ‘국토파괴부’라고 불러야 옳은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제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바른 판단과 삶의 기본이다. 바른 이름을 갖지 못하면 국민들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구교형목사(통일시대평화누리실행위원/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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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의 미래를 보여드립니다.

썩은 물 가득한 낙동강 하구둑이 바로 4대강사업의 미래입니다.  

 

정부가 지난달 4대강에 세울 16개 보 조감도를 발표하였습니다. 정부는 4대강에 세우는 보는 고정보가 아니라 수문을 개폐하는 가동보로 건설하기 때문에 수질 악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더욱이 4대강을 깊이 준설하고 물을 가득 채우면 오염물이 희석되기 때문에 수질이 개선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많은 전문가들은 4대강사업으로 인해 수질이 더 악화될 뿐이라고 그 위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오늘은 보 건설로 인한 수질 악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가동보라 할지라도 물은 썩는다  

 지난 7월 17일 MBC 100분 토론에서 정부 측 토론자로 나선 심명필 4대강사업 본부장과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박재광 교수는 가동보는 수문을 열어 홍수 때 오염물이 다 떠내려가고, 항상 일정하게 강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수질이 개선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낙동강 하구둑이 물을 가두는 보이지만, 가동보이기에 수질이 맑다고 예로 들었습니다.    

 MBC 100분토론 강 살리기인가? 죽이기인가?라는 토론 장면입니다.

낙동강 하구둑은 홍수시 비가 많이 오면 수문을 개방할 뿐만 아니라, 매일 한쪽 수문을 열어 일정한 양의 강물을 바다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낙동강 하구둑은 정부가 4대강에 세우려는 가동보와 동일한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낙동강을 가로막아 물을 가득 채우고, 가동보로 물을 바다로 흘려 내보내는 낙동강 하구의 수질은 얼마나 깨끗할까요?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보 건설의 해답은 낙동강 하구둑에 있습니다.  

 

정부가 4대강에 세우는 가동보와 같은 형태인 낙동강 하구둑입니다.

낙동강 하구둑은 가동보임에도 물이 정체되어 낙동강 중에서 물이 가장 오염되어있습니다.  

하구둑으로 가로막힌 낙동강 하류, 물빛이 초록색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을 좋아해서일까요? 낙동강 하류는 온통 녹색입니다. 그러나 녹색이 아무리 좋다한들, 물빛도 녹색이 좋은 것은 아니지요. 낙동강 하류는 강물의 흐름을 차단한 하구둑으로 인해 여기저기 녹조류가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낙동강 하구둑 주변은 이명박 정부가 좋아하는 녹색입니다. 그러나 녹색이 다 좋은 것은 아니죠.

녹조류 가득한 낙동강 하구둑 수질 


물이 많으면 물이 맑아진다는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낙동강 중에 보를 막아 물의 양이 제일 많은 낙동강 하구의 수질이 가장 맑아야합니다. 그러나 가동보인 하구둑을 세워 낙동강 중에서도 물이 가장 많은 낙동강 하구가 오염이 제일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경남지역에선 낙동강을 살리기 위해 하구둑을 헐어야한다는 논의가 최근까지 계속 되어왔던 것입니다.

물이 많으면 수질이 맑아진다는 정부의 주장이 거짓말에 불과함을 낙동강 하구둑이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동보든 고정보든 물길을 막는 보는 수질을 악화시킨다 

가동보 건설로 수질을 맑게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증거를 하나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MBC 100분 토론에 정부 측 토론자로 나섰던 박재광 교수는 환경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도 출석하였습니다. 박 교수는 4대강에 세우는 보는 가동보이기 때문에 홍수시에 강바닥에 퇴적된 오물이 다 떠내려가기에 보로 인한 수질 악화가 없다 주장하였습니다. 박 교수의 바로 이 주장이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근거입니다.  과연 현실이 그럴까요? 
 

환경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강우시 맑은 물이 보에 유입되어 물이 맑아진다고 주장하는 박재광 교수입니다. 정부는 국내 전문가가 얼마나 없었으면 국내 환경 현실의 기본적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을 4대강사업의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는것일까요? 

지난 10월 두 번에 걸쳐 가동보인 낙동강 하구둑 주변을 자세히 돌아보았습니다. 마침 낙동강 하구 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준설하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낙동강 하구의 준설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준설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뿐만 아니라 모래조차 모두 검은 빛깔이었습니다. 
 

 검푸른색 준설 현장은 낙동강 하구가 썩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래뿐 아니라 물빛이 썩음 그 자체입니다. 가동보인 낙동강 하구둑으로 물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낙동강 하구둑으로 부터 70km 상류인 4대강 사업의 '함안보'가 들어 설 예정지 근처입니다. 인제대 박재현 교수의 조사 결과, 함안보를 건설하게 되면 지하수 상승으로 인근 지역의 농지들이 침수 피해를 가져와 앞으로 농사짓기 어려운 재앙이 닥칠 곳입니다. 이곳에서의 준설 현장은 물과 모래빛깔이 모두 붉은 황토 빛입니다.   
 

물이 흐르는 곳의 준설 현장은 붉은 황토빛입니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하구둑 주변의 검푸른 물과 모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구둑이 비록 가동보라 할지라도, 보를 세워 물의 흐름이 정체되면 오염물이 퇴적되어 물과 모래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동보이기 때문에 물이 썩지 않는다는 정부의 주장이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임을 낙동강 하구둑이 증명하는 것입니다.
 
홍수 때는 일시적으로 강바닥의 퇴적물이 흘러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홍수는 일 년 중 며칠 되지 않습니다. 특히 4대강에 세우는 대부분의 보는 보의 일부만을 개폐하는 가동보일뿐입니다. 보로 인해 물의 흐름이 정체되면 유해성 녹조가 자라는 데는 단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특히 갈수기에는 가동보라 할지라도 흘려내려 보낼 물이 없을 텐데 과연 수질이 정상일까요?
 
더욱이 보와 보 사이의 간격이 20~30km에 이릅니다. 굽이굽이 휘어 도는 사행천이기에 수문을 일부 개방하는 가동보라 할지라도 정체되는 구간들이 많아지면서 녹조류가 번성하게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4대강 사업은 시작부터 잘못된 거짓말 투성이
 
환경부 국정감사에 정부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재광 교수는 비가 오면 맑은 빗물이 오염된 강물을 희석하여 강물이 맑아지게 된다며 보 건설로 인한 수질 개선을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논리인 희석론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관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농경지에 있던 퇴비와 농약이 여름의 집중 호우 시 빗물을 타고 강과 호수로 흘러들어와 수질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하천 오염의 가장 기초적인 상식입니다.  
 
전국 하천을 조사한 국내 수질 전문가인 강원대 김범철 교수는 '한강 상류 고령지 농업지역에서의 강우시 비점오염 유출 특성'이란 논문에서 '우리나라는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철에 강우가 집중하고 있으며… 이 시기에 유출된 비점오염원은 하천 및 호수의 생태계 교란, 부영양화 등에 영향을 준다. 특히 강우의 집중화로 인해 청정 하천으로 여겨지던 한강 상류 유역은 탁수 발생으로 수질이 악화되고 있으며, 하천과 호수로 유입되어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라고 집중호우 때 오히려 하천의 수질이 나빠진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집중호우시에 물이 맑아진다는 가정하에 4대강에 보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집중호우 때 오염원의 유출로 수질이 더 악화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범철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평상시 안대천의 BOD 1.6 이 강우시에 3.7로, 인북천은 BOD 0.5가 1.7로 급격히 악화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주장은 모든 것이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 그 자체입니다.

집중호우로 인한 수질 오염의 증거는 또 있습니다. 올해 '물 폭탄'이라 표현할 정도로 70년 만의 폭우가 내렸습니다. 비가 그친 뒤 대청댐에 녹조류가 번성하여 황토를 뿌리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리산 아래에 있는 남강댐 역시 비가 그친 뒤 녹조류가 번성하였습니다.  

 물폭탄의 엄청난 비가 그치자 녹조 비상이 걸린 대청댐입니다.

비가 물이 맑아진다는 정부의 주장은 뻥!~ 이었습니다.  

 

      대청댐만이 아니라 지리산 아래 남강댐도 비가 그치자 녹조류 비상이 걸렸습니다.

비가오면 물이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염이 가중됩니다.

4대강에 보를 막아 강을 호수로 만든 후에 비가 오면 4대강은 분명히 썩은 물이 될 것입니다


정부의 '희석론'이 옳다면 70년만의 폭우가 왔으니 모든 오염물이 다 씻겨나가고 강과 댐이 청옥같이 맑아져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비가 그치자 댐의 물은 녹조류가 번성하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비가 오면 강바닥에 가라앉았던 오염된 퇴적물이 다 씻겨가고, 맑은 빗물이 그 자리를 채움으로서 수질이 개선된다는 가설 속에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가설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4대강에 16개 보를 세워 강을 호수로 만드는 4대강사업은 국민의 식수를 썩은 물로 만드는 재앙임이 확실한 것입니다.  
 
  국내 하천은 부영양화 되기에 충분한 인(P)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4대강의 수질을 맑게 하겠다는 근거로 하수종말처리장에 총인 제거 시설을 확충하여 97%의 인을 제거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수종말처리장의 인을 제거하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인을 제거하게 되면 분명히 수질이 좀 더 개선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수종말처리장의 인 제거로 인한 수질 개선도 보를 세우지 않고 지금처럼 강물이 흘러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보를 세워 강물의 체류시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썩게 되어 있습니다.
 
김범철 교수는 정부가 하수종말처리장을 통해 인을 제거한다 할지라도 국내 하천은 녹조류가 번성하기에 충분한 인(P)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수종말처리장을 통해 97%의 인을 제거한다 할지라도 그 하수종말처리수의 기준 자체가 외국의 하수종말처리장에 비해 높을 뿐만 아니라, 농경지에서 강으로 유입되는 인(T-P)의 제거는 불가능한 것이 국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농경지는 대부분 축산 분뇨를 퇴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축산 분뇨를 바로 사용하든 발효시킨 퇴비로 사용하든, 아니면 액비로 사용하든 강을 오염시키는 인의 영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부는 4대강사업으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97%의 인을 제거하여 보를 세운다 할지라도 수질을 맑게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부의 인 기준은 0.2입니다. 그러나 위의 도표에서 보듯 외국은 이보다 엄격한 수질을 관리중입니다.

 우리나라 축산 분뇨는 퇴비로 사용되어 결국 하천 오염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원인이 됩니다.

 농경지 바로 곁의 청태로 가득히 썩어가는 하천입니다.

지천은 썩어가는데 4대강 본류만 파고 물을 채우면 4대강이 썩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수질은 물의 양이 아니라 흐르는 속도가 더 중요합니다  
 
하천에 오염원이 충분한 상태에서 수질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강물의 흐르는 속도 곧 체류시간입니다. 지금 국내 강물에 총 인(T-P)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썩지 않고 국민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수질 전문가인 김범철 교수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수질 개선 방안' 이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하천 몇 백 곳을 조사해본 결과 많은 경우 체류 시간이 짧아서 조류성장이 억제되어 있다. 하천에서의 녹조 예방은 체류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국내 하천은 이미 인이 높아 조류가 번성할 수 있음을 밝히는 김범철 교수

국내 부산대 김좌관 교수를 비롯하여 서동일 교수, 박재현 교수, 박창근 교수 등 많은 수질 및 토목 전문가들은 실험을 통해 4대강 사업으로 보를 세워 체류시간이 길어지면 수질이 악화된다고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민경석 교수도 MBC피디수첩에서 보를 세우면 정체되어 수질이 악화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수문을 여닫을 수 있는 가동보라 할지라도 가동보 설치 뒤 오히려 수질이 악화된다는 사실이 4대강 보 건설 시공사의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습니다. 4대강 사업 중 '낙단보' 건설사인 두산건설과 '칠곡보'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모의실험에서 보를 설치했을 경우에 수질은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의 주장처럼 아무리 멋지게 만든 명품 가동보라 할지라도 강을 호수로 만드는 4대강 사업은 결국 강물의 흐름을 지체시켜 국민의 식수를 썩은 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남조류를 키우는 4대강 사업이 당신의 생명을 위협한다.
 
4대강사업의 보 건설로 인한 수질 악화는 국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강의 흐름을 지체시키는 보 건설로 수질이 악화되면 녹조류가 번성하게 됩니다. 녹조류 중에는 남조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조류의 위험성은 인체에 간암을 일으키는 간독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시절 만든 천수만 간월호- 초록색 썩은 물이 넘쳐남니다.  

남조류는 물의 흐름이 정체되어 부영양화 되면 짧은 시간에 대량 번식하게 됩니다. 특히 남조류는 일종의 세균으로서 세포 분열이 왕성한데, 남조류의 한 종류인 Microcystis는 단 한 개의 세포가 일주일 후에 1000여 개, 2주일 후에는 무려 120만여 개로 엄청난 번식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조류의 위험성은 강물을 먹는 물로 만들 때, 염소 소독시 발암물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고 물맛과 냄새를 나쁘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남조류 중에 Anabaena, Aphanizomenon, Microcystis 등은 독성물질인 간독소와 신경독소를 만들어 다른 생명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줍니다.

이중 Microcystis는 사람에게 간독소로 작용하여 간질환과 간암을 유발시키고, 소와 양 등의 가축과 오리 등의 철새들에게는 간에서 인의 대사를 저해하여 모세혈관을 파괴하여 간을 두 배 부풀게 하여 결국 죽게 합니다.   

 

 서동일 교수는 MBC피디수첩에서 보를 세워 물이 정체되면 녹조균인 클로로필-a가 증가하고

이로인해 수질에 유해요소가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해한 남조류균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물이 흘러야합니다. 흐름이 정체되면 남조류균의 왕성한 번식을 도와 수질의 부영양화를 가중시키기 때문입니다. 4대강에 16개의 보를 세워 강물의 흐름을 정체 시키는 4대강 사업이 결국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무모한 도박임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멀쩡한 강에 보를 세워 물을 썩게 하고, 그로인해 남조류가 번성케 하여 국민 먹는 식수를 위협하는 것일까요? 지금 국민의 생명이 이명박 정부의 무모한 4대강 도박판에 걸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4대강에 보 건설을 위한 물막이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재앙이 시작된 것입니다.   국민 건강 위협하는 4대강 보 건설은 당장 취소되어야 합니다.






        최병성목사 
          환경운동가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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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희망을 본다.

하나님나라운동/교회개혁 | 2009. 11. 30. 13:40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제가 속한 교회개혁실천연대 부설 교회문제상담소의 상담 사례를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몰상식한 일이 많아 입에 거론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흔히 말하는 파렴치범은 교회에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많은 내용은 목회자들의 부정과 불륜, 재물횡령, 거짓말 등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문제를 일으키는 목회자들은 벽창호처럼 일반 교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 자기가 말한 것이 곧 법인 양 호도하고 교인들에게 순종을 강요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교인들로서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말로 교인들에게 말한다. 이것은 목회 사항이므로 목회자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예배에 대한 문제이니 이는 건드리지 말라. 목회자는 하나님이 기름부으셨으니 괴롭하면 벌을 받는다. 등등,,,

만인제사장설이 보편적인 진리임에도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교인들을 바보로 취급하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또한 예배당 건축을 성전(聖殿)건축이라는 말을 포장하여 헌금을 강요하고 이를 통한 자신들의 업적을 쌓는데 혈안이다. 예배당의 크기, 교인의 수, 헌금의 액으로 교회의 서열을 매기는데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교인들의 반응 또한 가관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종이라 자청하는 사람들에게 종이 된지 오래고, 그들의 말이라면 사회에서의 상사의 명령보다 더욱 복종하며, 비상식적인 것도 은혜로운 것으로 합리화하여 넘어가는 현상이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의 모습니다. 교회는 이들의 사교장이 되어가고 있고,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의 계급화된 서열을 좇아 가식된 모습으로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정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며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교회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며 은혜롭게 하자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이미 관례화된 지 오래다, 비상식의 차원을 넘어 몰상식의 단계이다.

이제 교회개혁이라는 목적을 향해 뛰어본지 1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나름 보람을 느끼며 운동을 해왔지만 너무나 상황은 절망적이다. 군부독재를 살던 선배들의 시대상황을 보는 듯하며 선지자들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보는 것 같다.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그러나, 황무지 같은 한국교회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날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의 우상화된 가치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자라나리라고 본다. 이 한국교회의 무덤을 뚫고 나갈 교회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자신들의 권위를 부정하며 새로운 권위를 쌓은 목회자들이 분투하고 있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투쟁하는 교인들이 있기에 가능하리라고 본다. 또한 이제는 이 개혁을 뒷받침할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기독 경영을 바탕으로 하는 착한 소비와 문화운동, 그리고 언론 매체들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말씀 위에 서서 우리는 그 희망을 향해 뚜벅 뚜벅 가야한다.









고상환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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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실천연대 사경회 2

하나님나라운동/신학 | 2009. 11. 30. 11:31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일시 : 2009년 11월 16일 장소 : 교회 다움 강사 : 정준경 목사 (뜨인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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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실천연대 사경회 동영상1

하나님나라운동/신학 | 2009. 11. 30. 11:25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일시 : 2009년 11월 16일 장소 : 교회 다움 강사 : 정준경목사(뜨인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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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를 폐지하라!

맘몬주의???/정치와 사회현상 | 2009. 11. 28. 22:56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정부부처 제자리 찾아주기①-환경부 편 

   


요즘 많은 공무원들이 제 정신이 아니다. 부처를 만든 제 일은 하지 않고 국민의 혈세는 함부로 낭비하고 있다. 용인시, 성남시를 비롯해 많은 자치 단체장들은 서민복지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공관, 청사만 크게 짓고 있다. 하나같이 인공적 토목공사에만 목숨을 걸고 있다. 또 일부 정부부처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 만큼 고유의 기능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그들에게 새삼 존재이유를 물어야 한다.

 “환경부는 있어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우리나라 정부부처 중에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지 정치인들 사이에 전리품 나누기 정도의 흥정대상으로 전락한 부서들이 있다. 지금껏 농림부, 여성부, 그리고 환경부 등이 자주 그래왔다. 특히 그 장관들은 해당 분야 전문성이나 업무수행능력 같은 것에 큰 관계없이 계파나누기나 지역배려 차원에서 적당히 입각시켜주는 흥정대상으로 이용된 적이 많다.

그러다보니 장관들도 자신의 주무부처 입장을 대변하려하기보다는 적당히 웃어른(?)의 심기를 살핀다든지 정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도움(?)을 주는 정권합리화 담당부서처럼 변하곤 했다. 이러한 경향에 어느 정권에서든 항상 빠지지 않는 부서가 바로 환경부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불문율이 ‘성장’ ‘친기업 규제완화’이다보니 환경부는 어느 때보다 바빠졌다. 그런데 환경부가 환경을 보존하는데 바쁜 게 아니라, 정부의 환경파괴 의지를 합리화 해주는데 바쁜 것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 개발의지의 가장 만만한 대상은 늘 그린벨트다. 서민주택사정을 부동산투기 근절과 실수요자 중심의 대책으로 풀기보다는 실증적 통계와도 맞지 않게 늘 공급만 늘리는 것으로 풀려고 한다. 그 때 써먹을 만병통치약이 바로 그린벨트다. 그런데 그린벨트 해제에는 엄격한 요건이 따라 붙기에 환경부는 그걸 무력화시켜달라는 정부의 민원(?)을 떠맡게 된다.

수도권에 대규모 신도시 택지를 개발한다는 정부의지에 밀려, 환경부는 허용되지 않는 1~2등급 땅도 해제, 허가해 주었다. 현 정부 중점공약사항인 보금자리 주택지 공급을 위해서도 환경부는 원칙을 허문 환경평가에 앞장섰다. 무엇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환경부의 태도는 무소신이라기 보다는 환경파괴 합리화에 목숨을 건듯 하다. 통상 4계절 모두에 걸쳐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사전환경성 검토와 환경영향평가를 본류만도 1,300km가 넘는 광대한 4대강은 겨우 4~5개월 만에 다 끝내 버렸다. 날림도 이런 날림이 없다. 환경부는 이번에 환경파괴 합리화에 정말 큰 공을 세웠다. 이만의 현 장관은 부끄러운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환경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 ‘설립목적/임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제40조 (환경부) 환경부장관은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의 보전과 환경오염방지에 관한 사무를 장리(掌理)한다.'에 규정된 바와 같이 각종 환경오염으로부터 우리 국토를 보전하여 국민들이 보다 쾌적한 자연,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나아가 지구환경보전에 기여하여 하나뿐인 지구를 보전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치목적과는 다르게 환경부는 실제 자연환경 보존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주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시적 개발이익과 정권적 필요를 정당화해주는 역기능마저 감당하고 있다. 정부 내 많은 부처들이 함께 공유해야할 통일성은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다른 부처, 심지어는 청와대와의 긴장을 각오하고서라도 자기 부처가 있어야할 존재이유를 거스르는 정책이 있다면 맞서야 한다. 그게 바로 그 부처 공무원들에게 국민이 월급을 주는 이유다.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도 없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있음으로 해서 환경파괴를 합리화시켜준다면 무익(無益)이 아니라 백해(百害)다. 

할 일을 하지 않는 환경부장관에게 1억이 넘는 연봉에 * 국유 철도 선박 항공기 무료 이용, * 외국 출장시 1등석 이용, * 골프장 사실상 ‘회원 대우’, * 외국 출장시 해당 공관원 영접 등 막대한 대우를 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환경부는 마땅히 없어져야 하며, 자격 없는 이만의 장관은 마땅히 사퇴해야 한다.









구교형목사(통일시대평화누리실행위원/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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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약 1:15)는 말씀처럼 우리 인간들의 돈과 물질적 번영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져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고, 결국 하나님이 지으신 소중한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육식선호로 인해 반(反)성경적 공장식 사육장을 운영한 것은 우리 인간들인데, 그로 인한 조류독감(AI)이 일어났다고 죄 없는 오리와 닭을 수 백 만 마리나 산채로 묻어버렸습니다. 쏟아져 들어오는 고기수요에 맞추겠다고 수 만 마리의 소들을 한 곳에서 사육하고, 빠른 발육을 촉진하기 위해 풀 먹고 살아야할 그들에게 동족을 갈아 만든 동물성사료를 먹입니다. 창조질서에 역행한 인간의 무자비한 탐욕에 소들이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광우병입니다. 소가 무슨 죄입니까, 하나님!

이제 올해는 돼지랍니다.

이번에도 수천, 수만 마리를 한 곳에 합사하는 기업형 축산사육이 문제입니다. 돼지 폐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서로에게 전염되었고 콧물, 침, 호흡기 등을 통해 드디어 인간들에게까지 찾아왔습니다. 신종플루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탐욕에 대한 회심은 없이, 그저 주사 맞고 손발만 깨끗이 씻으면 된다고 거짓평안을 늘어놓습니다. 이번에도 죄는 인간이 지어놓고, 엉뚱하게 돼지들이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변종 전염병들이 창궐하는데도 우리는 모든 것을 우연과 운으로 돌리고 삶을 바꿀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다양한 여론조사들마다 국민의 60~70%가 반대한다는데도 ‘4대강 죽이기 사업’은 결국 착공되었습니다. 골마다 서식하는 생태가 다르고 수심의 높낮이에 따라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건 상식인데도, 총 1,400km가 넘는 강들을 3~6m 깊이로 일정하게 규격화하면서도 생태계를 보호한다고 합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게 당연한 상식인데도 4대강 곳곳에 모두 20개의 보를 쌓고, 주변은 콘크리트로 막아 거대한 수족관을 만들면서도 수질을 살리겠답니다. 이제는 쌓았던 콘크리트 구조물도 다 허물고 다시 생태적 자연하천을 만드는 게 대세인 판에, 멀쩡한 자연하천에 인공장벽을 쌓으면서도 녹색사업이라고 거짓말을 해대고 있습니다. 

 

                             경인운하 막개발현장(사진제공 : 최병성)  

너무나도 슬픈 것은 바로 이 황당무계하고 반성경적인 생태죽이기 사업이 장로 대통령의 고집과 역시 기독교인인 국토부 장관의 충성심, 게다가 집사 국무총리와 장로인 환경부 장관의 무소신이 함께 어우러져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더욱 기가 막히고 슬픈 것은 적지 않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성장, 번영의 신화에 빠져 이러한 시대정신을 축복하며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맘몬주의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존중하고 ‘사람이 밥보다 말씀으로 산다’(마 4:4)는 것을 전해야할 교회가 귀가 막히고, 눈이 막히고, 정신이 막혀 하나님보다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패함을 막지 못하는 쓸모없는 소금이 되어 ‘개독교’니 ‘먹사’니 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세상에서 짓밟히고 있습니다(마 5:13). 이미 우리는 죄의 대가를 달게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죄 많고 무지몽매한 한국교회라도 그냥 버리지 마시고, 다시 고쳐 주소서.

이제라도 기독교가 제정신을 차리고, 주께서 일곱 번이나 보시기에 좋다고 감탄하셨던(창 1:4, 10, 12, 18, 21, 25, 31) 하나님의 작품인 이 피조세계를 존중하며 당장의 편의를 위해 마음대로 자르고, 뽑고, 뚫고, 시멘트로 발라버리지 않게 하소서. 더 이상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판자집에 모여앉아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을 거리로 내쫓지 않게 하시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투기목적으로 사둔 땅과 집을 성령의 은혜로 팔아 나누게 하소서(행 4:33~35). 이제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소유권보다 생존권이 우선(신 24:6, 10~22)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외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주께서 복주신대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하나님나라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며, 다시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마 5:16).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 이 기도를 꼭 들어주옵소서. 

죄인을 불쌍히 여겨 새사람 되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사무총장/교회개혁실천연대집행위원/통일시대평화누리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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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토지법10) 구약 70인역과 토지

하나님나라운동/경제 | 2009. 11. 24. 14:36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단어의 뜻과 용례

한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의 용례를 관찰하여야 한다. 특히 동일한 저자가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여야 한다. 한 단어는 불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사용자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0:22의 ‘끄떼마’의 의미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를 마가복음의 저자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여야 한다. 사전을 보고 이 단어의 뜻이 ‘토지’라고 하거나 ‘재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인 것이다. 사전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가 아니라 저자의 용례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끄떼마’는 마가복음에서는 10:22에 한 번 등장한다. 또한 마가복음의 저자가 쓴 작품이 마가복음 이외에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으므로 마가복음의 저자가 ‘끄떼마’를 어떤 뜻으로 사용하였는지 관찰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 차선책은 마가복음의 저자가 읽었던 문헌들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그가 읽었던 문헌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번역인 70인역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에 인용된 구약본문들이 70인역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이 구약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부분들을 관찰해 보면(1:2, 3; 7:6-7, 10; 10:19; 11:17; 12:10-11, 19, 26, 29, 30, 31, 32, 36), 이 부분에 사용된 206 단어 중에 178 단어가 70인역과 그 형태까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비교를 위하여 편의상 네스틀레-알란트 27판의 마가복음 본문과 A. Rahlfs가 편집한 Septuaginta,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35]의 본문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86.4 %의 일치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일치에 입각하여 마가복음 저자는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70인역에서 인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70인역을 인용하였다면 이것은 그가 평소에 70인역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70인역에 사용된 헬라어 용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끄떼마’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 단어가 70인역에서 가지는 의미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70인역에서 ‘끄떼마’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관찰하여 그 단어가 마가복음에서 어떠한 뜻을 가질 수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70인역과 끄떼마

70인역에서 ‘끄떼마’는 잠언 12:27; 23:10; 31:16; 욥기 20:29; 27:13; 호세아 2:17; 요엘 1:11에서 사용되었다. ‘끄떼마’의 뜻은 우선 히브리어 구약 성경과 비교하여 파악될 수 있다. 70인역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70인역의 번역자들이 사용한 히브리어 성경 본문과 동일한 본문이 우리에게 남아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70인역의 번역자들이 사용한 히브리어 성경 본문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본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70인역 본문을 히브리어 성경 본문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70인역 번역자들이 그들이 사용한 헬라어 단어에 어떠한 뜻으로 사용하였는지 추측할 수 있다. 히브리어 본문으로는 맛소라 본문을 담은 BHS 본문을 편의상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70인역 번역자들이 사용한 히브리어 구약 본문과 BHS 본문이 서로 동일하다고 간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70인역을 읽는 독자들이 70인역을 읽으면서 히브리어 성경과 비교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70인역의 독자의 하나로서의 마가복음 저자도 70인역에 사용된 ‘끄떼마’의 의미를 히브리어 성경과 비교하여 파악하기 보다는 70인역의 자체 문맥 속에서 파악하였을 수 있다. 그러므로 ‘끄떼마’가 사용된 70인역의 문맥이 이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70인역에 담긴 ‘끄떼마’의 의미가 아니라 70인역의 독자로서의 마가가 사용한 ‘끄떼마’의 의미를 찾는 것이 목적이므로 70인역 문맥의 관찰은 더더구나 중요하다.

잠언 23:10

70인역 잠언 23:10에서 ‘끄떼마’는 히브리어 성경 잠언 23:10의 ‘사데’(토지)에 해당한다. 70인역 잠언 23:10의 번역자는 ‘끄떼마’를 토지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하였기에 토지를 뜻하는 ‘사데’를 ‘끄떼마’로 번역하였을 것이다.

또한, 70인역 잠언 23:10의 독자는 문맥을 통해서 ‘끄떼마’가 토지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70인역 잠언 23:10은 다음과 같다.

영원한 경계들을 변경시키지 말고

고아의 끄떼마에 들어가지 말라.

여기에서 ‘끄떼마’는 ‘경계’(호리아)에 평행된다. ‘영원한 경계’란 조상대대로 기업으로 내려오는 토지의 경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토지의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 27:17을 배경으로 한다. 70인역 신명기 27:17은 이웃의 ‘경계’(호리아)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토지의 경계를 옮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희년이 되면 토지가 원주인에게 돌아가는 레위기 25장의 토지법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70인역을 읽는 독자들은 잠언 23:10에서 ‘끄떼마’를 토지의 경계를 뜻하는 ‘호리아’와 관련시켜서 재물이 아니라 토지를 뜻하는 말로 이해하게 될 수 있다. 또한 ‘끄떼마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현은 ‘끄떼마’가 재물이 아니라 토지를 가리킴을 분명하게 해 준다. 마가복음의 저자도 70인역을 읽었다면 ‘끄떼마’의 의미를 그렇게 파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마가복음 10:22에서 ‘끄떼마’를 토지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잠언 31:16

잠언 31:16에서 ‘끄떼마’는 히브리어 본문의 ‘케렘’(포도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재물보다는 토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잠언 31:16의 70인역 문맥도 ‘끄떼마’가 토지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려준다. 70인역 잠언 31:16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녀는 농토를 보고 구입한 후에 그녀의 손의 열매로부터 끄떼마에 심었다.

농토를 구입한 후에 끄떼마에 심었다면 ‘끄떼마’는 농토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세아 2:17

70인역 호세아 2:17에서 ‘끄떼마따’는 히브리어 본문의 ‘케렘’(포도원)에 대응한다. 따라서 ‘끄떼마따’는 토지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70인역 자체의 문맥도 출애굽 때처럼 하나님께서 ‘끄떼마따’를 주신다는 맥락이다(“내가 그에게 끄떼마따를 줄 것이다”). 출애굽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가나안 땅이므로 여기서 ‘끄떼마따’는 토지를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요엘 1:11

요엘 1:11에서 ‘끄떼마따’는 히브리어 본문의 ‘코르밈’(포도원들)에 해당한다. 또한 70인역 요엘 1:11은 “추수를 망쳤기 때문에 끄떼마따를 위하여 슬퍼하라”는 내용이므로 여기서 ‘끄떼마따’는 추수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끄떼마따’는 농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욥기 20:29

욥기 20:29에서 ‘끄떼마’는 히브리어 본문의 ‘나할라’(기업, 분깃)에 해당한다. ‘나할라’는 일차적으로 상속 재산을 가리키는데 상속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토지였다(민 26:53; 33:54; 신 4:21; 수 11:23; 13:6; 시 105:11; 겔 47:14; 48:29 참조). 그러므로 이 단어에 대응하는 ‘끄떼마’는 토지를 가리킬 수 있다. 70인역 욥기 20:29의 문맥 내에서 보면 ‘끄떼마’는 ‘분깃’에 평행된다.

이것은 불경건한 사람이 주로부터 받는 분깃이며

감찰자로부터 그에게 주어지는 소유들 가운데 끄떼마이다.

‘분깃’은 이스라엘 각 집이 분배받은 분깃(몫)으로서 토지를 가리킬 수 있다(민 18:20; 수 14:4; 18:5). 그런데, 욥기 20:29에서 ‘끄떼마’는 하나님의 보응을 가리키기 위해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유적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상속 재산으로서의 토지를 가리키는 1차적 의미를 토대로 얻어진다. 그러므로 욥기 20:29에서의 ‘끄떼마’의 용례는 이 단어가 1차적으로 토지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음을 알려준다.

욥기 27:13

욥기 27:13에서도 ‘끄떼마’는 히브리어 본문의 ‘나할라’(기업, inheritance)에 대응한다. 또한 70인역 문맥에서 ‘끄떼마’는 ‘분깃’에 평행된다.

이것은 불경건한 사람이 주로부터 받는 분깃이며,

전능자로부터 권력자들에게 끄떼마가 임할 것이다.

여기서 ‘끄떼마’는 이스라엘 각 집이 분배받은 분깃으로서의 토지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물론 근접 문맥 속에서 이 단어는 비유적 의미(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보응)를 가진다. 그렇지만 비유되는 내용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로서의 토지에 비유되었다. 이러한 비유는 ‘끄떼마’가 1차적으로 토지를 가리킬 때 가능하다.

맺음말

70인역에서 사용된 ‘끄떼마’라는 단어는 대개 토지를 가리키거나 토지라는 구체적 개념을 기초로 형성된 추상적 개념을 가진다. 70인역에서 ‘끄떼마’가 토지를 의미하지 않는 본문은 잠언 12:27뿐이다. 잠언 12:27에서 ‘끄떼마’는 히브리어 본문의 ‘혼’(부)에 대응하고 문맥상으로도 ‘토지’를 뜻한다고 볼 근거가 없으므로 부(wealth)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끄떼마’가 70인역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토지를 가리킨다면 마가복음의 저자는 70인역을 읽으면서 ‘끄떼마’가 토지를 뜻하는 단어임을 파악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마가복음을 기록하며 ‘끄떼마’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도 이 단어에 “토지”라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0:22에서 ‘끄떼마따’라는 단어의 의미를 해석할 때, 우리는 마가복음의 독자들이 이 단어를 “재물”을 뜻한다고 간주해온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마가복음의 저자가 이 단어를 사용하며 의도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토지”라는 의미의 정당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독자들의 함성에 의해 묻혀진 저자의 세미한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독자들은 저자가 아무리 작은 소리로 말한다고 할지라도 저자가 말하기 시작하면 침묵하여야 한다. 저자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수천년의 거리에 떨어진 우리가 분간할 수 없을 때에는 저자에게 확성기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70인역은 마가복음 10:22의 ‘끄떼마따’를 위하여 그러한 확성기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재물’인지 ‘토지’인지 분간되지 않던 세미한 음성이 70인역이라는 확성기를 통과할 때 ‘토지’라고 크게 들려지게 된다.







     신현우 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 이글은 복음과 상황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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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목사와 용기있는 성도

하나님나라운동/정치 | 2009. 11. 3. 10:05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작은 개척 교회를 2년째 섬기고 있지만 가슴은 겁 없이 더 커져 가고 있다. 말씀을 마음으로 곱씹으며 다양한 삶의 현장을 적용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만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사로 산다는 것은 신명나는 일이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가 더 많다.

요즘 내가 서성거리는 현장은 재래시장의 야채가 널려 있는 곳이다. 장터에서 먹거리를 팔고 사시는 분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야채 장사 즉 먹거리를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년들과 성경 공부를 하며 '세상을 바꾸는 대안 경제'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와 청년 실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 나만의 '성공 비결'을 위한 성경 공부가 아닌 하나님나라를 위한 경제 활동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일터를 생각해 보고 책도 읽었다. 투자자는 마냥 이익을 보고 노동자는 일만 하는 그런 구조가 아닌 일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생산자나 소비자가 함께 정당한 이익을 보는 구조를 세워 보기로 했다. 결국 생존 경쟁의 가장 치열하고 적나라한 야채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새벽 3시에 도매시장을 돌며 야채를 매입하여 복지관이나 도시락 업체에 납품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고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주중에 일하는 청년들의 꾀죄죄한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나는 왜? 작은 개척 교회를 어렵게 찾아온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 주고 세상의 성공 방법론을 설교하고 가르치지 못할까. 그래도 우리 성도들과 청년들은 자신들의 욕구와 세속적 가치를 부추기는 가르침보다는 서투른 나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부쩍 교회 식구들이 경제적 삶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나눔과 섬김을 생각하면서, '공정 무역'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단어를 자신의 일터에 적용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몸부림에 감사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상대적으로 어렵게 일하시는 식구를 보며 미안해하고 빚진 마음을 갖고 있다. 대기업을 다니는 어느 집사님은 "나는 로마군인 같아요. 왜 주님은 그만두라고 하시지 않나요?"라며 신앙인으로 직장 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한다. 나는 "집사님! 복음을 받고 거듭난 고넬료에게 로마군대의 백부장을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변하면서 같이 아픔을 나누어 본다.

내가 용산 참사 현장을 자주 방문하여 예배드리고, 고통당하는 그들을 위해 작은 헌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성도들의 너그러움 때문이다. 사실 나는 설교 준비와 함께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의 일들로 바쁜 일정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우리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매우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설교 시간에는 "아파트 평수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 축복입니다"라고 큰소리치니 간 큰 목사이다.

요사이 가슴으로 많이 울고 있다. 꾀죄죄하지만 세상에 도전하는 청년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용기를 갖고 있는 성도들 때문이다. 부자 되기를 포기하고 교회 나오는 식구들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을 목표로 용산 참사를 외면하고 자연 파괴를 무시하면서까지 뉴타운 개발과 4대강 사업으로 무한 질주를 하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진다. 상대적으로 성장 위주 앞에선 우리 교회 성도들은 더욱더 작아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방인성목사  함께여는교회 목사 
                뉴스앤조이발행인 겸 편집인

*이글은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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